대구소재 섬유업체의 이모사장.

그가 자금부장과 함께 주거래은행인 대동은행을 찾은 것은 30일 오전 10시.

전날 선적서류와 신용장을 들고 이 은행을 방문했지만 문이 닫혀 안에
들어갈수 없었다.

정부가 최대한 앞당겨 전산망을 정상화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찾은
것이다.

당장 15만달러에 이르는 수출환어음을 네고하지 못하면 갑작스런
자금난으로 회사가 곤란에 빠질 것이 뻔했다.

더욱이 자사에 납품하는 일부 거래업체가 부도를 당할 것같아 덜컥 겁이
났다.

30일은 월말일뿐 아니라 기말이어서 모든 결제가 집중된 날.

자금수요가 최대에 이른 날이다.

아예 은행문은 굳게 내려져 들어갈수도 없었다.

경찰들만 굳게 문을 지키고 있었다.

은행문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은 이사장 뿐이 아니었다.

어느누구도 대동은행관계자는 물론 인수은행인 국민은행 사람도 만날수가
없었다.

그는 급한대로 핸드폰으로 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여섯차례에 걸친 시도끝에 겨우 국민은행 관계자와 통화를 할수 있었다.

하지만 은행원은 네고를 비롯한 대출이 언제 재개될지 뭐라고 답변할수
없다고 말했다.

대동은행측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아 전산망복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언제 개통될지에 대해서도 예측할수 없다는 얘기였다.

자신은 인수팀의 일원으로 본점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니 자세한 사항은
국민은행 본점으로 확인해보라는 답변뿐이었다.

울분이 치솟았다.

은행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인수업무조차 거부하는 은행원과 아무 대책
도 없이 퇴출을 ''강행''한 정부가 그렇게 원망스러울수 없었다.

이 회사는 대동은행과 수년동안 거래해 왔다.

예.적금과 대출은 물론 어음할인 수출환어음매입등 모든 업무를 이 은행을
통해 처리해왔다.

그런데 느닷없이 퇴출이라니.

그것도 금융감독위원회에서는 인수은행으로 하여금 전산망을 철저히
장악토록 하겠다는 발표와 함께 통장을 통해 확인할수 있는 예금은
지급하겠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실제는 은행에 접근할수조차 없었다.

정부발표와 현실은 너무나 동떨어진 상태였다.

보통예금이라도 꺼내 쓸수 있다면 급한대로 납품대금을 결제, 거래업체의
부도를 막는데 사용할텐데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당장 원자재 대금을 갚지 않으면 내일부터 원자재구입마저 어려워져
며칠내 공장가동을 중단해야 할 판이다.

대동은행 퇴출이 몰고온 여파는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자사가 발행해 만기가 도래한 어음 5천만원도 문제였다.

자사입장에서는 은행업무가 재개된뒤 갚아도 된다고 하지만 어음을
지급제시한 거래업체는 또 어떻게 되는가.

거래업체는 어음대금을 받아야 또 다시 협력업체에 결제하고 종업원들
임금도 줄 것 아닌가.

하지만 어음결제대금 입금도 불가능했다.

로컬신용장 개설도 중단됐다.

원단업체 5개사에 로컬신용장을 개설해 줘야 이들 업체가 무역금융을 쓰고
원자재를 구입, 납품을 할텐데.

이사장은 앞이 캄캄했다.

무엇보다 수출환어음매입이 급한 이사장은 H은행을 찾았다.

이 은행은 평소 거래가 별로 없었지만 이 회사의 딱한 사정을 듣고 최대한
빠른 시일안에 수출환어음을 매입해주기로 약속했다.

그럼에도 며칠만에 매입이 이뤄질지 근심이 가시질 않았다.

은행에서 돌아오는 그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수 없었다.

도대체 은행퇴출발표를 왜 월말과 분기말이 겹쳐 자금수요가 가장
큰 이때에 하는가.

아예 앞당겨 중순에 하든지 7월중순정도에 하면 이런 큰 혼잡은 피할수
있었을 텐데.

또 노르망디상륙작전처럼 기습적으로 퇴출발표를 할바엔 부작용을 막을수
있는 방안을 사전에 충분히 강구해야 할 것 아닌가.

공무원들이 현실도 모른채 탁상공론으로 일을 처리하니 결국 죽어나는
것은 기업뿐이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 김낙훈 기자 nh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