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및 금융구조조정에 대한 정부방침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그룹상 4개사씩 5대그룹 계열 20개사를 포함한 50여개 퇴출기업의 명단이
확정단계에 들어갔고 신한 국민 주택 한미 하나은행에 부실은행 1개씩을
인수하라는 금감위 요구도 나왔다.

이른바 빅딜(대기업그룹간 사업교환)은 강하게 밀어붙이는게 정부방침인
것같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이 "자기들이 하려고 도장까지 찍고 안하겠다며 약속을
뒤집는 것도 시장경제냐"며 빅딜차질에 대한 강한 불만을 나타내면서
"정부가 무조건 방관하고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시장경제는 아니다"고
밝힌데서도 엿볼 수 있다.

김대통령은 이자리에서 "지금은 어떤 의미에서 졸속이 필요한 때"라며
개혁의 속도를 높이라고 촉구했다.

IMF이후 현안과제로 등장한 기업및 금융구조조정이 말이 요란했던데 비해
실제 이루어진 것이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바로 그래서 대외신인도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조차 나오고 있기도
하다.

개혁의 속도가 만족할만하지 못한데는 여려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게 보편적인 인식이다.

대통령이 관계장관들을 질책한 것도 그런 점에서 충분히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구조조정은 원칙적으로 민간자율에 맡겨야할 사안이겠지만 정부개입이
없으면 어렵게 돼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은행통폐합 등 금융구조조정은 현실적으로 정부가 주도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사안이다.

또 부실기업정리 등 기업구조조정은 은행이 주도적으로 해나가야할 문제지만
오랜 기간 자율을 행사하지 못한채 관치에 길들여진 은행현실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바로 그래서 우리는 이미 여러차례 정부가 책임의식을 갖고 금융부실을
해결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또 은행에서 작성한 퇴출기업명단에 5대그룹 계열사가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이를 다시 만들라는 정부지시 등도 은행자율에 맡긴다는 당초 발표와
어긋나는 것이지만 5대그룹 계열사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한
은행권의 잘못도 바로잡는 것은 정부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최근 며칠사이 드러난 정부의 구조조정방침은 뭔가 잘못된 감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왜 무엇때문에 구조조정을 하느냐는 본질적인 시각에서 의문을 갖게 되는
대목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금융및 기업구조조정은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바로 그런 시각에서 빅딜문제도 다뤄야하고 은행통폐합도 해나가야한다고
본다.

신한은행 등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을 충족한 5개 은행에 대해
1곳씩 부실은행 자산및 부채를 넘겨받을 준비를 하라는 금감위지시만 해도
그렇다.

지방소재 전국은행 또는 지방은행중 1개씩을 이들 은행에 인수시키겠다는
얘기인 셈인데, 이는 은행통폐합을 통해 이른바 리딩 뱅크, 곧 우량선도
은행을 만들겠다던 것과도 거리가 멀다.

이들 은행에 지방은행을 흡수시킨뒤 또 한차례 대형은행간 합병을 유도할
수도 있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합병-또 합병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금융구조조정의 기대효과는 반감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오래전부터 바람직한 대안으로 얘기돼온 외환-국민은행간 합병이나 최근
들어 거론되고 있는 조흥-신한은행간 합병 등으로 대형 우량선도은행이
나오도록 하는 작업이 선행돼야한다고 본다.

5개은행의 지방은행과의 짝짓기만으로는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다.

특정지역에는 지방은행이 있고 또다른 지역에는 없어지는 꼴이돼 불균형
시비를 낳을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대기업그룹간 빅딜은 또다른 시각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부실기업정리와는 거리가 있다.

당연히 자율에 맡겨야할 사안이다.

정부에서 간여한다면 해당산업의 경쟁력에 대한 고려가 우선돼야한다.

예컨데 삼성자동차를 현대자동차에 넘긴다는 빅딜을 강요하기에 앞서 전체
자동차산업차원의 구조조정을 생각해야한다.

기아자동차는 어떻게할 것이냐는 판단이 당연히 선행돼야한다.

빅딜이 성사된다면 특정업종의 회사수가 하나 줄어들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꼭 그 업종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보장은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쟁력있는 업체에 짐을 얹어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합의가 이루어졌다가 무산되기까지의 과정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정부당국의 빅딜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따지고보면 3대 그룹에 대해 한 업종씩 주고받는 형식 그 자체가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다.

경제성이 없는 공급과잉업종의 비교열위 업체와 그렇지않은 업체를
교환하도록 강요하는 꼴이 돼서는 불평이 나올 것은 당연하다.

빅딜이 대기업그룹의 고통분담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 사회.정치적인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빅딜이 성사되더라도 대기업그룹간 사업영역이 조정되는 것일뿐이라는
점에서 경제력집중문제와도 무관하다고 봐야한다.

대기업그룹 계열사중 다른 계열사의 지원이 없으면 존속할수 없는 한계
기업에 대한 강제퇴출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업다각화 자체를 죄악시하고 계열기업및 업종수를 줄이라고
강요하는 것만이 결코 능사일수는 없다.

사업다각화와 복합경영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사업형태는 사업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구조조정에 어느정도 정부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우리는 충분히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사업형태나 업종을 정부에서 좌지우지하려들어선
곤란하다.

시장경제의 근본을 해치는 결과가 될수 있다.

빅딜강요는 바로 그런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구조조정의 목적과 본질을 보다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