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폭락이 가속화되면서 미국과 일본 등의 시장공조가 언제나 이루어질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본의 독자적인 노력으로는 엔화하락을 저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총리는 15일 엔화약세를 저지하기 위한 선진 7개국
(G7)의 협조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그는 이날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엔약세에 대한 대책을 묻는 야당의원의
질의에 "우리 단독으로는 시장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다른 나라들
로부터 협력을 받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앞서 다이샹롱 중국 인민은행총재와 둥젠화(동건화) 홍콩행정장관도
미국에 대해 엔화방어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아시아쪽에서의 이같은 호소에 아랑곳 없이 서방 선진국, 특히
미국의 자세는 여전히 요지부동인 것이다.

"시장개입은 임시방편일 뿐이며 먼저 일본경제의 체질부터 고쳐야 한다"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는 입장이다.

유럽쪽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EU)은 이날 영국 카디프에서 회원국 정상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EU개혁과 역내 실업문제가 주의제였고 엔약세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

미국이나 유럽이나 다같이 엔약세와 아시아 위기를 "강건너 불보듯"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과 유럽이 이처럼 엔약세에 오불관언식의 자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엔약세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이 연례보고서에서 "미국과 서유럽의 경제는 아시아
위기에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 이를 대변한다.

실제로 요즘 미국과 서유럽 경제에는 아시아 위기가 오히려 ''수입물가
하락''이라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관련, J.P모건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아비나시 페르소도 "엔화환율은
미국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시작해야 비로소 반전될 것"이라고 주장
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이 엔약세에 팔짱을 끼고 있는 또하나의 이유는 현재 상태에서
시장에 개입해 봐야 효과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시장에 엔의 추가절하를 기대하는 투기세력이 워낙 강해 웬만한 개입으로는
대세를 돌려놓기 힘들다는 것이다.

"지금은 시장개입에 나설 때가 아니다"라는 루빈 미 재무장관의 거듭된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같은 판단은 어느정도 타당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일본 정부가 엔방어를 위해 2백억달러를 투입하고도 실패한 적이
있어서다.

루빈 장관은 "지금 시장에 개입했다가 또다시 실패할 경우 엔화의 바닥세를
더 내려놓는 결과만 빚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배경을 감안할 때 결국 엔약세를 저지하기 위한 선진국들의 시장
개입은 미국과 유럽경제에 아시아 위기의 영향이 본격화되고 시장의 투기
심리가 어느 정도 진정된 후에야 가시화될 전망이다.

즉 엔화약세로 인한 미국 등 선진국의 대일무역 역조가 더이상 방치할 수
없을 만큼 확대되고 환투기 자본의 힘이 약화되는 조짐이 나타나야 시장개입
여건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일본 닛코증권 유럽지사의 이코노미스트 에릭 피시위크는
"달러당 1백55-1백60엔쯤 돼야 시장개입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