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3년 말레이시아에 진출해 현지에서 공장을 가동중인 성진기공의
나연수 사장.

그는 지금도 말레이시아 투자청(MIDA)의 사이드 파이잘씨를 잊지 못한다.

당시 파이잘씨의 직책은 사무관.

나 사장이 투자계획서를 갖고 MIDA를 찾았을 때 운송.기계부서의 담당자
였다.

파이잘씨의 임무는 성진이 현지공장을 세울 때까지 나 사장을 돕는 것.

인.허가에 필요한 서류작성이나 투자상담 등이 주업무였다.

파이잘씨는 대단히 친절한 공무원이었다.

이곳 저곳의 공단을 같이 돌아다니며 공장부지를 알아봐 주고, 합작파트너로
UMB라는 현지 기업을 알선해 주기까지 했다.

휴일이라도 나사장에게 급하게 일이 생기면 파이잘씨는 아무 불평없이
도와주었다.

이렇게 따라 다니길 꼬박 1년.

공장설립건이 구체화되면서 나 사장은 문득 파이잘씨에게 식사 한번 변변히
대접하지 못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한국에서 흔히 하듯 "성의표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본사에 연락해 특별지출에 대한 승인도 얻어냈다.

그러나 정작 식사대접을 하는 자리에서 파이잘씨의 태도는 뜻밖이었다.

"사례를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정색을 했다.

오히려 당황한 쪽은 나 사장이었다.

무안해 하는 나 사장에게 파이잘씨는 "정 그렇다면 부서전체에 기부해
달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결국 나 사장은 운송기계과 스포츠클럽에 한화 약 20만원 상당의 운동기구를
기증하는 것으로 사례(?)를 대신했다.

이 회사가 말레이시아에 진출한 지도 벌써 5년째.

나 사장은 지금도 가끔 파이잘씨와 전화통화를 한다.

그때의 유쾌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그때는 참 신기하다 싶었어요.

한국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공무원의 모습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그런게 자연스럽더군요"

일반적으로 외국계 기업들이 투자계획서를 내고 난 후 실제로 공장을 가동
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년 남짓.

MIDA에선 담당공무원을 지정해 투자기업의 애로점을 돕도록 배려한다.

공장을 짓고 난 후에도 정부의 지원은 계속된다.

인력을 채용할 때 해당부문의 고급인력들을 소개해 주는가 하면, 중복투자가
일어나지 않도록 유사업종의 투자를 조정하는 역할도 한다.

동일한 제품의 수입을 막아 투자업체들의 조업률을 일정수준 이상 보장하는
것도 정부의 일이다.

일단 말레이시아에 투자한 기업들에 대해선 "이익"까지도 책임지겠다는
자세다.

"기업의 이익은 MIDA의 이익이며, 이는 곧 국가의 이익"(마샤라칸 국장.
산업개발국)이기 때문이다.

MIDA 중앙청과 지방청간의 관계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초기 투자단계에서의 각종 인.허가권은 물론 MIDA 중앙청의 몫이다.

그러나 실제 기업들의 공장이 들어서는 지역은 지방공단인 경우가 대부분
이다.

공장 설립 등 실무작업에 들어가면 주정부와의 접촉이 더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MIDA는 10여개 주에 각각 지방청을 두고있다.

MIDA 본부가 1차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주요업무는 해당지역의 MIDA
지방청으로 이관된다.

그때부터 지방자치단체와의 복잡한 인.허가처리 문제는 지방청의 몫이다.

여기선 "세세한 입주절차를 알려주는 것은 물론 용수공급이나 근로자들의
채용 문제까지도 알선해 준다"(KOTRA 콸라룸푸르무역관 김태호과장).

이런 환경인 만큼 기업과 공무원들간에도 의견교환이 활발하다.

기업인들 역시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셀렘방 공단에 위치한 삼성전관(SEDM)의 전영옥부장은 "이런저런 문제때문에
기업활동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 공무원들은 일단 수긍하는 분위기다.

즉시 고쳐지기 힘든 규제라면 우리보다 더 걱정해 준다.

그러다보니 기업들도 무리한 요구를 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기업인과 공무원간 "관계의 선순환"이 정착되는 것이다.

콸라룸푸르 세마탄거리에 있는 MIDA 본부.

사무실 중앙의 벽면엔 다음과 같은 문구로 시작하는 고객헌장(client''s
charter)이 걸려 있다.

"MIDA의 모든 공무원들은 기업인들과 잠재적인 투자자들에게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분투한다"

국가간 자본유치경쟁이 세계시장을 무대로 진행되는 전쟁이라면, 그래서
이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면, MIDA의 공무원들은 잘 훈련된 "전사"
임에 틀림없다.

< 콸라룸푸르=이의철 기자 ec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