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충영 < 중앙대 국제대학원장 cyahn@cau.ac.kr >

민주노총이 10일로 예정된 총파업계획을 철회하고 제2기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키로 결정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엔화가치 하락 등에 따라 대외여건이 우리경제를 전혀 도와주지 않는
형국에서 노조의 파업은 우리 도끼로 우리 발등을 찍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리경제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업의 아픔이 근로자에게 있다면 회사의
부도를 막으려고 동분서주한 기업가가 모든 것이 좌절되자 온 가족이 자살해
버린 사용자의 처절한 아픔이 있다는 것도 함께 인식해야 한다.

노동절에 일어났던 민노총의 가두시위는 전세계에 방영됐다.

이는 우리나라 대외신인도에 결정적 찬물을 끼얹었다.

전후상황이 거두절미된채 시위현장만 방영되었을 때 국가신용의 추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해외현지 금융까지 포함해 2천1백억달러에 이르는 총외채에서 연간
이자만도 1백50억달러나 발생하는 빚더미 위에 우리경제는 서있다.

3백40억달러정도의 외환보유고가 있다지만 국제민간자본의 유입이 어려워
지고 국내 노동계와 정치권의 불안요소 때문에 국내증시를 떠받치고 있는
"사자"세력이 훌쩍 떠나버리면 주가와 원화가치는 날개도 없이 추락해
버린다.

그렇게 되면 노사가 함께 공멸하게 된다.

우리경제가 IMF관리체제로부터 벗어나고 성장을 재개하여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열쇠는 하루빨리 국가신용도를 높여 외자를 유치하는 길밖에 없다.

국가신용도를 높이는 길은 모든 경제주체가 합의점을 찾고 고통을 분담
하면서 구조조정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것이다.

지금 전세계는 우리나라의 구조조정과정을 현미경을 통해 관찰하듯
주목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위기 탈출은 아시아 경제위기 해결에 청신호가 되기 때문에
한국의 대응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후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초엔저 자금은 외국인투자
형태로 주변 아시아 제국으로 무려 1천2백억달러가 흘러들어갔으나 한국에는
오지 않았다.

필자가 만난 일본 경제인들은 한.일간의 역사적 앙금이 남아 있는데다
노조의 빈번한 파업과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그리고 과격 노동쟁의를
보노라면 한국에 대한 투자는 화약고에 불을 켜고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
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70년대를 통해 자본주의 종주국 영국이 노조파업 천국으로 경제적
기력을 상실하고 선진대열에서 탈락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79년 집권한 대처총리의 대처리즘은 "시위나 파업은 실업만 양산할
뿐이며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교훈을 터득하게 만들었다.

노사분규의 제로시대를 만들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도로 정착시킨
영국은 금융빅뱅도 함께 실시해 노조파업신드롬에 싸인 프랑스와는
대조적으로 외국인투자자들이 가장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나라로 바뀌었다.

밖으로만 뻗어가던 중상주의의 종주국 대영제국이 자기 땅으로 외국인
투자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경제활력을 찾고 있는 것이 오늘날 역사의
현장이다.

80년대부터 몇차례 IMF관리체제에 들어갔던 멕시코는 94년 외환위기 때는
노사정 경제사회연대협약의 실천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노사정사회협약이 연방노동법을 우선하도록 만들었다.

처음에는 물가 성장 임금상승률의 동결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세디요
대통령은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노사정협약 정신의 기조를 완전히
바꾸었다.

노조가 경제성장률을 높이는데 적극 동참키로 함으로써 노사분규는 대폭
줄어들었다.

제2기 노사정위원회는 선진국에서 이미 정착된 정리해고제와 변형근로제를
우리나라에도 본격 도입하고 그대신 모든 근로자에 대한 고용보험과 실업자에
대한 재훈련 등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착실히 구축해야 한다.

나아가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지방선거가 끝난 후 정부는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실천해 갈 계획이라고
한다.

김대중대통령의 역사적 미국 방문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경제의 저력을
미국의 조야에 전달하고 국가신용도를 높이는데 있다.

노조가 이제 대통령의 이러한 노력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우리경제가 끝없는 나락에서 방황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회생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제2기 노사정협의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경제회생의 길을 함께 선택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