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골퍼의 해외대회 우승은 사실 박세리이전에도 ''빅뉴스''가 많았다.

시간과 더불어 잊혀지긴 했지만 그들이 존재함으로써 오늘의 박세리가
탄생한 것이 사실이다.

남녀를 통틀어 한국인의 외국대회 ''큰 우승''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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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 개척자들 ]]

한국프로골프는 불모지와 다름 없었던 지난 70년대에도 의미있는 우승이
존재했다.

대표적인 것은 한장상(58)의 72년 일본오픈우승이다.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한국골프를 풍미하던 한장상은 72년 일본최고
권위대회인 일본오픈에서 우승, 일본에서 더 알려진 인물이 됐다.

그는 당시 우승자의 자격으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73US매스터즈에
참가하기도 했다.

현 한국프로골프협회 수석 부회장인 김승학(51)의 73년 아시아서킷
필리핀오픈 우승도 골프사에 남을 쾌거로 손꼽힌다.

김승학은 당시 우승등으로 73브리티시오픈에도 출전, 4라운드합계
2백73타로 28위에 오르기도 했다.

골퍼들은 한국남자프로들의 메이저 출전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저멀리 70년대에 두명이나 참가 기록이 있는 것이다.

[[ 80년대 유일한 성취 ]]

80년대의 우승은 뭐니뭐니해도 88년 구옥희의 미LPGA투어 터콰이즈클래식
(현 대회명은 스탠더드 레지스터 핑)우승이 대표적이다.

한국여자프로로는 최초로 미국투어에 진출했던 구옥희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문밸리CC에서 벌어진 대회에서 7언더파 2백81타로 정상에 올랐다.

구의 당시 우승은 지금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척박한 환경에서 이룬
"그녀만의 성취"로 우승 값어치로 따지면 박세리 이상으로 봐야한다.

1956년생인 구옥희는 43세의 나이에도 지난 24일 끝난 일본LPGA투어
브리지스톤오픈에서 우승하는등 특유의 승부욕을 과시하고 있다.

구옥희의 역사는 바로 한국여자프로의 역사로 인정받아야 할듯.

그러나 남자프로골프는 80년대가 빙하기와 같아 이렇다할 해외우승기록이
없다.

[[ 90년대 도약 ]]

잠잠하던 프로골프에 획기적 쾌거가 된 것이 지난해 김종덕의 일본
PGA투어 기린오픈우승이다.

김종덕은 최종라운드 최종 18번홀에서의 칩샷 버디로 4언더파 68타를
기록, 4라운드합계 10언더파 2백78타로 극적인 역전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경쟁자는 현재 일본최고인기선수인 마루야마 시게키를 1타차로
제친 것으로 일본프로골프입장에선 몹시도 뼈아픈 역전패였다.

김종덕은 당시우승으로 아시안투어 상금왕 자격으로 97브리티시오픈에도
출전했었다.

그는 일본투어 시드권도 확보, 올시즌 상금랭킹 40위를 마크중이다.

이번 박세리의 우승은 위와같은 역사의 하이라이트.

나날이 치열해지는 세계골프투어의 경쟁성을 감안하면 프로초년생으로서
박의 우승은 그 미래를 기약하는 최고성취가 아닐수 없다.

[[ 해외우승 5선 ]]

<>1998년 =박세리(미국 LPGA챔피언십)
<>1997년 =김종덕(일본 PGA투어 기린오픈)
<>1988년 =구옥희(미국 LPGA 터과이즈클래식)
<>1973년 =김승학(아시아 서킷 필리핀 오픈)
<>1972년 =한장상(일본 오픈)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