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체제는 숨겨진 축복(blessing in disguise)"

미셀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총재는 지난 연말 한국과의 협상을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IMF 체제하에서 고통스런 개혁과정을 밟겠지만 개혁을 마치고 나면
튼튼한 경제로 되살아날 것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IMF의 지침을 충실히 따라 개혁 개방작업을 벌이고 있다.

30개종금사중 절반수준인 14개 종금사가 정리됐다.

은행을 포함한 나머지 금융기관들도 대대적인 통폐합을 앞두고 있다.

기업들도 자산매각등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다.

개방은 더이상 정부가 꺼리는 과제가 아니다.

외국인이 국내기업을 마음대로 인수합병(M&A)할수 있게 된 것은 물론
금융기관들은 외국인투자자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은 가까운 시일내에 완전 개방된다.

그러나 이같은 개혁 개방실험이 성공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남아 있다.

IMF가 긴축과 고금리정책에 대한 태도를 다소 누그러뜨리긴 했지만 과도한
처방으로 산업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시장경제에 맞는 관리능력을 단기간내에 갖출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 IMF 프로그램 논란 = IMF의 지원으로 외환수급상 애로는 해결됐다.

그러나 급격한 종금사폐쇄에 따른 금융경색과 고금리처방은 한달에 1만여개
나 되는 기업의 연쇄도산을 불러 왔다.

협조융자를 요구하는 기업들이 줄을 서고 있다.

제조업체의 평균가동률은 60%대로 떨어져 중고기계들이 헐값에 해외로
팔려 나가고 있다.

IMF가 고금리정책을 완화하고 수출기업 지원강화에 동의했지만 때가 늦지
않았느냐는 우려가 높다.

구조조정이 끝난 뒤에도 경쟁력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는 것이다.

"고금리현상이 조기에 해소될수 있도록 IMF를 계속 설득해 나가야 한다"
(ING베어링은행의 최원락 서울지점장)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IMF 처방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해외에서 더 높다.

제프리 삭스 하버드대교수는 IMF의 처방에 대해 줄기찬 반대의견을 펴고
있는 대표적인 논객.

그는 금리를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신용 경색을 피하기 위해 적절히
돈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급격한 금융기관폐쇄와 자기자본비율 준수를 밀어부쳐 수출업체들마저
도산시켜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IMF와 함께 개혁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는 세계은행의 스티글리츠부총재
마저 "아시아국가들은 저축률이 높고 재정이 건전하기 때문에 과거 다른
나라들의 금융위기와는 원인이 다르다.

긴축을 강요하기보다는 성장을 유지시키는 것이 낫다"며 삭스교수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 변하지 않는 관행 = 제도는 바꾸었지만 30여년간의 관치경제에 길들여진
관행과 경영행태는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정부가 관치금융을 포기한다고 선언했지만 금융기관들이 여전히 정부눈치를
보고 있는게 단적인 예다.

대기업에 대한 협조융자를 놓고 정부부처를 찾는 것도 변함이 없다.

"정치권의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청탁 인사청탁 전화도 줄지 않았다"고
정부관계자들은 지적한다.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기관들은 자기자본비율을 자력으로 맞출 방안도 없으면서 합병만은
하려 하지 않는다.

임원과 직원들이 자신들의 자리가 없어질까봐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해외의 우량 대형금융기관들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서로 손을 잡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리해고제를 도입했지만 본격적인 고용조정을 하고 있는 대기업은 많지
않다.

정부가 어정쩡한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관료화된 기업경영진의 행태변화에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의 정순원전무는 "외국인투자를 유치해야 구조조정재원도
조달하고 낡은 관행개선도 촉진할수 있다"고 제시했다.

<> 정부능력의 한계 = 정부가 시장경제에 맞는 관리능력을 갖추는 것도
관건이다.

정부는 최근 외환거래를 대폭 자유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국세청이나
법무부 등에서는 반대의 소리가 높다.

사후관리체제를 갖추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삭스교수는 "한국이 금융부문을 적절히 감독할수 있는 속도로 개방을 해야
한다. 적절한 감독수단없이 금융부문을 개방하면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 김성택 기자 idnt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