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경제위기를 보는 외국 언론 및 경제전문가들의 시각이 점차
냉담해지고 있음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지난 12일에는 미국경제전략연구소(ESI)토론회에서 루디거 돈부시 교수를
비롯한 경제전문가들이 한국의 위기극복 노력에 강한 회의를 표시해 주목을
받더니만 19일에는 세계적 경제예측기관인 미국 와튼계량경제연구소(WEFA)가
한국이 3~4년내에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국가신인도를 회복하기는 어렵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WEFA가 12개 항목에 걸쳐 작성한 이 "국가위험도(country risk)"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재정부문을 제외한 전항목에 걸쳐 4~6점(10점 만점)
을 받아 아시아 13개국 평균수준(5.4~6.4점)에도 못미쳤다.

특히 금융개혁의 지지부진을 반영하듯 금융시장의 불안 정도(2점)는
아시아국가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우리 경제의 강점으로 평가돼온 성장잠재력이 아시아평균(6점)에도
못미치는 4점을 받았다는 것은 2000년 이후의 성장복원력도 매우 어둡다는
평가에 다름아니다.

물론 IMF사태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는 한국경제에 대한
해외의 분석과 전망에 대해 우리가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전망 자체가 서로 엇갈리는 경우가 많고 뚜렷한 근거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WEFA의 평가만 하더라도 살아 움직이는 동물과도 같은 경제상황을
계량모델화하여 몇년후를 예측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현 경제위기가 당초생각보다 오래갈 수 밖에 없다는 것 쯤은 우리 국민
스스로가 점차 피부로 느끼기 시작하고 있는 터이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의 위기를 비교적 낙관적으로 분석해오던 외국
전문기관과 한국의 개혁노력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해외언론의
시각이 최근 크게 달라지고 있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한국정부의 오락가락하는 정책혼선이 개혁을 지지부진하게
만들고 있다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지적은 음미해볼만 하다.

부실기업에 대한 협조융자를 둘러싼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 기업에 대해
구조개혁을 채찍질하면서도 정리해고를 못하도록 하는 모순된 정책, 재원
마련은 생각지도 않고 2조원 규모의 실업기금을 추가로 조성하겠다는
즉흥적인 발상과 같은 일관성없는 정책혼선이 해외의 시각을 어둡게 만드는
주범은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

답답한 것은 우리 국민만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의 지적은 외국인들의 답답한 심정을 대변한다.

까짓 해외의 몇몇 연구소와 언론의 평가 쯤이 무슨 대수냐고 할수도 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유치가 절실히 필요한 현 경제위기의 성격상 해외의
호의적 시각은 위기를 푸는 중요한 "이그니션 키"임을 잊어선 안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