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영업파트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는 강진태(가명)부장.

18년째 회사생활을 해온 그는 요즘 걱정이 태산같다.

지난해에는 실적이 좋아 다행히 최고 등급의 연봉을 받았지만 올
영업실적이 썩 시원치 않아서다.

극심한 내수침체로 상반기 영업목표를 채 60%도 채우지 못했다.

부하직원들에게 짜증도 내보지만 당장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이대로 가면 내년에 최하등급을 받아 1천5백만원이상 연봉이 깎일게
뻔하다.

씀씀이를 줄여야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고민은 이 사실을 가족에
알리는 것이다.

남들은 요즘 같은때 연봉운운은 "행복한 고민"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자리보전"을 걱정하기는 강부장도 마찬가지.

영업실적이 저조해 최하등급의 연봉을 받게되면 정리해고 대상이 될수밖에
없다.

강부장이 근무하는 회사는 올해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퇴직금정산을 하지
않아 연봉이 줄면 퇴직금도 따라서 줄게 된다.

퇴직금 깎여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분발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아 먹는다.

최근 연봉제를 도입한 회사에 근무하는 월급쟁이들은 대부분 강부장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줄곧 연공서열에 따라 월급을 받아오던 터에 연봉제는 낯설기만 하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라고 받아들이기보다 불투명한 장래를
우려하는 사례가 훨씬 많다.

일종의 가치혼란을 겪고 있는 셈이다.

연봉제 도입에 따라 월급쟁이의 회사생활이 적지 않게 변했다.

먼저 월급쟁이의 단골 화제였던 월급얘기는 일절 찾아볼 수 없다.

어지간히 절친한 사이에도 좀체 월급얘기는 꺼내지 않는다.

상대방의 아픈데를 찌를수 있어서다.

보너스 얘기도 없어졌다.

다만 보너스를 받을때가 훨씬 좋았다는 말은 농담처럼 간간히 흘러나온다.

연봉제 도입으로 보너스가 없어져 매달 손에 쥐는 돈은 좀 늘었지만
떼는게 많아 "실속"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S사에 근무하는 이모부장은 "주택융자금 우리사주대출금 등을 제하면
연봉제 이전보다 월급이 그렇게 늘지 않아 꼭 보너스만 빼앗긴 것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또다른 변화는 대인관계에서 나타난다.

예전에는 원만한 직장생활과 승진을 하려면 상사에게 잘보여야 했다.

그러나 연봉제를 도입한 이후 대인관계보다 수치로 명확히 드러나는
실적이 중요해졌다.

연봉제를 도입한 대부분의 회사들은 임직원의 업무를 되도록 수치화하도록
했다.

평가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영업부서에 근무하는 경우 실적이 곧 연봉에 반영된다.

팀내 위계질서가 흐려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동료애도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자연히 쓸데없는 잡담 등 업무외 대화는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D사에 근무하는 김모부장은 사무실 분위기가 갈수록 삭막해져
회사다닐 맛이 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연봉제 도입후 새롭게 발견되는 현상은 너나 없이 자기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점이다.

여의도 증권회사에 근무하는 박모대리는 팀장의 변화에 깜짝 놀랐다.

어느날 갑자기 영어회화공부를 하더니 일과가 끝나면 전산교육을 꼭꼭
챙겨듣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연봉제를 도입한 회사직원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발견할
수 없다.

연봉제도입이 확산되며 월급쟁이들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 석학들의 예언을 암기하는 사례도
늘었다.

일상적인 회의도 알차게 진행된다.

모두가 회의를 철저히 준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봉제도입이 명분을 얻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 이익원 기자 ik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