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미국의 독주시대를 맞으면서 2천년전의 로마가 떠올려지는
것은 비약이 아니다.

견제세력이 없는 것도 그렇고 하나씩 정복시켜 나가는 수순도 닮은
꼴이다.

두 나라가 전파하는 "로마화"와 "미국화"는 기나긴 세월을 중앙에 두고
대칭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끝내는 무소불위의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까지도 빼 박고 있다.

2천년 전에 로마로 통하던 길은 이제 "워싱턴 경유"로 바뀌었다.

모든 가치의 척도는 "달러"로 환산된다.

코카콜라와 햄버거 청바지 윈도95 할리우드는 이제 더이상 미국의
문물이 아니다.

영어는 세계의 표준말이다.

북아일랜드의 오랜 갈등과 중동의 알력, 일본 경제회생, 아시아 외환위기,
인도와 북한의 핵, 아프리카의 굶주림등 5대양6대주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치고 미국의 손이 가지 않고 풀릴 문제는 하나도 없다.

미국은 지구촌의 입법 사법 행정권을 틀어쥐게 됐다.

마치 로마가 그랬던 것 처럼.

세월을 거슬러 가자.

로마는 수도없이 많은 나라들을 공략하며 세력을 넓혔다.

하지만 적어도 2차 포에니전쟁때까지 "정복"은 없었다.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고 주변의 아테네와 스파르타, 마케도니아를
차례로 평정했지만 복종을 요구하지 않았다.

패배한 나라에도 완벽한 자치권을 줬다.

내정간섭은 불명예로 치부했다.

얼마간의 전쟁배상금을 받아가는 정도였다.

심지어는 잡혀온 노예에게도 시민권과 투표권을 주었다.

말그대로 "동맹"을 만드는 것에 족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방을 위해서는 피를 흘리는 것이 로마식 명예였다.

그 대신에 로마로 연결되는 넓은 길을 닦았다.

반란의 조짐이 보이면 즉각 군사를 몰고 가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길로 달린 것은 "로마화"다.

로마의 문화가 나갔고 다양한 문물과 사람이 로마로 몰려들었다.

로마는 날마다 새로워졌고 그것이 유럽을 제패한 힘이 됐다.

''팍스로마나(PaxRomana.로마지배에 의한 평화)''의 시대였다.

미국도 그랬다.

한국과 베트남에서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아까운 목숨을 바쳤다.

기아해소, 우주개발, 지뢰폐기, 환경오염 방지등 지구적 문제에 미국만큼
돈을 많이 내는 나라가 없다.

한국의 장애아를 가장 많이 입양한 사람들도 바로 미국인이다.

그 대가로 주문하는 게 "미국화"다.

정치에서는 민주화를, 경제에서는 미국식 시장경제를 요구한다.

"로마화" 그 자체가 힘이 됐듯이 오늘날은 "미국화"의 정도가 경쟁력이다.

다시 2천년 전으로 가자.

힘이 세지면서 로마는 달라진다.

끝까지 항거하던 코린트는 초토화시켜 버렸다.

카르타고엔 더 가혹했다.

스스로 도시를 파괴하라는 명령을 듣지않자 쳐들어가 모든 건물을 잘게
부수어 버리고 사람이 살지 못하게 소금을 뿌렸다.

지나친 요구라며 난동을 부린 시민들은 노예로 팔아 넘겼다.

카르타고에 주민이 거주하게 된 것은 로마의 소금세례를 받고난 뒤
1백년이나 지나서 였다.

패배자에 대한 관용은 없어졌다.

전쟁에서 명예 따위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오로지 응징과 복수
뿐이었다.

싫든좋든 로마화도 강요됐다.

제국주의의 태동이다.

2천년뒤에 새롭게 등장한 제국 미국은 어떤가.

자신들은 경제학에도 없는 "신경제(New Economy)"를 구가하면서 아시아에는
경제원론을 강요한다.

고성장에서도 물가와 실업률이 떨어지는 것은 미국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아시아의 "덜 미국화된" 나라들은 성장률을 낮추어야 물가가 안정된다고
한다.

기업과 은행은 헐값에 미국에 넘겨야 살아 남는다.

심지어는 기름값과 밀가루값 전기료까지 간여한다.

요구를 듣지않으면 돈을 주지 않는다.

끝까지 버티던 인도네시아에서 폭동이 벌어지고 정권의 운명이 휘청거리는
장면은 2천년전의 카르타고를 연상케 하고도 남는다.

"팍스아메리카나(PaxAmericana.미국지배에 의한 평화)"는 흔들리기
시작한 것인가.

"역사는 수레바퀴 처럼 돌며 반복된다"는 가설이 마치 "미국이 로마의
길을 따르리라"는 예언으로 들려 가슴이 섬뜩해 진다.

정만호 <국제부장 manh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