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판정기준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부실기업 판정잣대는 크게 네가지다.

미래의 생존가능성, 외자유치 실현가능성, 소유주의 소유권포기가능성,
대량실업 등 사회적 파장정도 등이다.

지금은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이라도 이 네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경우
얼마든지 회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특히 "회생가능기업"에 대해선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해 주고
부채를 깎아주는 한편 신규대출도 해준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이달말 은행들로부터 "퇴출대상"으로 분류될 대기업은 총 10개
안팎에 그칠 것이란게 일반적 시각이다.

감독당국과 은행들이 부실기업 판정기준의 가장 중요한 잣대로 삼고 있는게
미래의 생존가능성이다.

과거나 현재는 문제가 있더라도 살아날 가능성이 있으면 적극 지원한다는게
은행들의 생각이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도 이날 "현재의 비정상적인 조건에서 기업의 부실
여부를 결정한다면 거의 대부분이 부실 판정을 받고 결국은 은행과 기업이
모두 쓰러질 것"이라며 "미래의 생존가능성을 보고 기업부실을 판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미래의 생존가능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기업의 실질가치를
내세우고 있다.

즉 자산에서 부채 지급보증규모등을 모두 제외한 실질가치를 우선 따져
보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현금흐름 부채구조 등 재무적인 지표들이 모두 감안된다.

이를 토대로 기업의 구조조정계획및 실현가능성을 판단, 생존여부를 결정
하겠다는게 은행들의 구상이다.

은행들은 지난 12일 자구계획을 발표한 거평그룹을 자구계획이 원활이
진행된다는 전제아래 미래의 생존가능성이 있는 대표적 기업으로 꼽고 있다.

외자유치 가능성도 중요한 잣대로 등장했다.

외자유치는 기업생존뿐만 아니라 외환위기 타개의 핵심이다.

만일 외국자본이 국내기업에 투자하면 이는 회생의 신호탄으로 봐도 무방
하다는게 은행들의 판단이다.

아울러 계열사를 외국기업에 매각하는 기업도 높은 점수를 줘야 하며
부채탕감 등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2억5천만달러의 외자유치를 추진중인 동아건설과 계열사의 해외
매각을 진행중인 한화그룹 등은 이 작업이 성사되는냐에 따라 그룹의 사활이
결정될 전망이다.

또 다른 잣대는 소유주의 태도다.

기업소유주가 경영권이나 소유권에 집착할 경우 기업의 회생가능성은
그만큼 적어진다는게 은행들의 생각이다.

이미 부실화된 대기업의 상당수가 소유주의 무리한 욕심으로 화를 자초한
것도 사실이다.

이 위원장도 "기업들은 필요하면 소유권을 적극적으로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이달말까지 생존가능성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소유주의 자세를
중점 점검할 계획이다.

만일 소유주의 태도가 비협조적이라면 회생가능성이 있어도 퇴출시킬
생각이다.

또 회생가능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도 소유권및 경영권박탈을 전제로 출자
전환 등의 지원을 해줄 방침이다.

따라서 협조융자를 받고 있거나 법정관리를 진행중인 기업의 경우 현
소유주의 퇴진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량실업 등 사회적 파장정도는 정부가 중요한 잣대로 여기고 있다.

만일 종업원이 수천명인 대기업을 퇴출시킨다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초래된다는걸 우려해서다.

정부는 따라서 종업원이 많은 기업의 경우 일시적 퇴출을 유도하기 보다는
"기업해체-퇴출유도"의 2단계 작업을 거칠 계획이다.

계열사를 분리해서 개별기업별로 정리한다는 것이다.

증시에서는 30대 대기업중 11개기업이 회생불가기업으로 확정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은행들은 그러나 아직 어떤 것도 확정된게 없다며 부실기업 선별작업은
이제 시작단계라고 해명했다.

은행들은 또 은행공동의 판정기준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판별작업을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자칫하면 "구색맞추기식"으로 부실기업이 분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하영춘 기자.ha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