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대통령이 10일 이달말까지 부실기업을 정리하겠다고 직접 밝힌데
대해 기업들은 초긴장 속에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하면서도 인위적인 부실기업 정리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자칫 부채비율이 높거나 영업실적이 나쁜 회사들의 경우 무더기 "회생불가"
판정을 맞을 수도 있다는 걱정인 셈이다.

하위그룹들은 이에 따라 주거래은행을 "설득"하기 위해 자발적인 계열사
정리내용을 담은 구조조정 계획을 재작성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일부 업체들은 "자력회생 가능"이란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내기 위해 외국계
컨설팅업체 등으로 달려가고 있다.

경제단체들은 부실기업 조기 정리가 구조조정에 도움을 줄 것이란데
대해서는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추진해온 계열사 매각과 외자유치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김태일 이사는 "한달안에 대기업들의 회생가능여부를
결정짓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우선 순위를 정해 문제가 되는 기업만
심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행들이 제살기에 급급한 상황이어서 무더기로 회생불가 판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는 특히 각 금융기관들이 실적 경쟁을 벌일 경우 구조조정 방향이
왜곡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세진 연구위원은 "이달말까지는 우선 화의 내지 법정
관리를 신청한 기업들의 회생가능여부만 판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명확한 원칙과 방향설정없이 은행에만 맡길 경우는 혼란이 커질 수
있다"며 "부실기업 판정과 지원 등을 총괄할 기관을 마련해야 책심소재가
분명해진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경우는 사정에 따라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미 외자유치와 한계 계열사 정리 방침을 밝힌 5대 그룹들과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탄탄한 롯데나 동국제강 등은 다소 느긋해 하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그룹들은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특히 법정관리나 화의를 신청한 기업,협조융자를 받았던 기업 등은 부실
기업 분류 과정과 그 결과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하위그룹들은 자발적인 계열사 정리 일정을 담은 구조조정계획을
새로 작성해 주거래은행의 "심사"에 대비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

중화학 계열사가 많은 모그룹의 경우는 최근 외국 컨설팅업체에 사업구조
조정계획작성을 새로 맡겼다.

특히 "높은 부채비율에도 불구하고 성장성이 높다"는 평가를 기대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국제비교를 통한 데이터를 확보하지 않으면 실정을 잘
모르는 은행들이 어떤 판정을 내릴지 모른다"고 외국인에게 의뢰한 이유를
설명했다.

모그룹 관계자는 "기업들이 시한에 쫓겨 자산매각 협상테이블에서 수세에
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부실기업평가는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