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이 8%에 못미치는 12개 은행이
은행감독원에 낸 경영정상화계획의 내용은 예상했던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점포축소 등 경영합리화면에서는 의지를 보였으나 자발적 합병 등에서는
구체적이지도 획기적이지도 못하다"는게 은행감독원관계자의 평가였지만,
은행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현재의 금융여건에서 어느 은행이 "우리는 어느 은행과 합병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기를 기대하는건 한마디로 무리다.

우리 금융의 문화나 체질을 감안할 때 그러하다.

대부분의 은행이 지배주주도 없는데다, 은행장이 다른 은행장에게 우리와
통합하자고 제의할 수 있는 기업인수합병(M&A)문화가 정착된 여건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누차 지적한 바 있지만 은행간 통폐합은 정부가 주도할 수밖에 없다.

강원은행은 대주주가 같은 현대종금과 올해말까지 합병을 끝내겠다는
계획을 냈지만,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구국책은행과 국책은행, 또는
지방은행간 합병 등은 정부주도에 의한 강제통폐합이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는게 현실감이 있다.

증자와 합병중 선행돼야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합병이다.

합병을 통해 대형화하고 대외적인 공신력을 높여 외자도 유치해 주가를
액면가이상으로 끌어올린 뒤 증자절차를 밟는 것이 무리없는 수순이다.

합병단계에서 기존 부실을 반영한 감자나 정부의 후순위채권매입 등
지원조치가 취해진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어쨌든 은행구조조정의 본격적인 시동은 은행간 짝짓기의 대상을 정하는
것이 돼야한다.

개별은행차원의 정상화계획이 아니라 전체 금융산업차원에서 통폐합대상이
정해져야할 것이고, 그렇게 하려면 역시 정부주도 강제통폐합외에는 방법이
없다.

12개 은행이 낸 경영정상화계획중 어느 은행 것이 은행감독원승인을 얻고
어느 은행 것이 그렇지 못할지는 더 두고봐야 알 일이지만, 우리는 각
은행의 계획에 평점을 매기는 것 자체가 그렇게 큰 의미가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12개 은행이 모두 빠짐없이 들고나온 증자만해도 어느 은행이 실현가능성이
더 크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평가하는게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작년말기준 11조2천3백40억원에 달한다는 이들 은행의 무수익자산(6개월
이상 연체여신)을 줄이는 문제만해도 그렇다.

그것은 기존 은행부실대출을 정부에서 어떻게 처리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느냐는 정책적인 판단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지,
개별은행차원에서 마땅한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진정코 금융정상화를 빠른 시일안에 이룩하려면 정부에서 먼저 단안을
내려야한다.

짝도 지어주고 은행증자 후순위채권매입 등에 대해서도 정부방침을 분명히
해야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