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검찰에서 전직 부총리와 경제수석에 대한 환란책임을 묻는 수사를
진행하는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정책의 판단에 대한 잘잘못을 검찰차원에서 수사한다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다.

또한 그러한 정책판단이 잘된 것이냐 아니면 잘못된 것이냐는 그 자체만을
놓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검찰수사가 국민여론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면 지난 가을, 혹은 그
이전의 우리 경제정책도 그 개별정책의 결정에 따른 득실을 떠나서 국민
여론에 의해 주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경제가 심각한 구조적 불균형에 처해 있으며 언젠가 대폭적인 조정
과정을 거쳐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는 것은 외환위기 이전에 이미 많은
이들이 인식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지난해 11월 그렇게 급전직하로 외환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사실 아무도 없었다.

위기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을 때 이를 어떻게든 수습해 보고자 하는
것이 정책당국자들의 당연한 태도이다.

지난해 11월의 우리 정책당국자들도 그러한 태도로 임했으리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러한 과정에서 구체적인 정책대응이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된 것이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외환보유고를 감추고 금융기관 대외부도를 어떻게든 틀어막아 국가부도사태
를 피해보려 한것이 옳았느냐, 혹은 곧바로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것이
옳았느냐 등에 대해서는 판단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사법적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우리경제의 오늘날이 있게된 것은 한마디로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생산성보다 웃도는 봉급을 받아온 근로자의 책임이며, 투자수익성보다
웃도는 금리를 받아온 예금주의 책임이며, 이익이 남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투자를 늘려왔던 기업인들의 책임이며, 그런 기업을 정리하려 할
때 못하게 했던 정치인들의 책임이며, 이 모든 사람들에게 바른 경제질서를
설득하고 정착시키지 못한 정책당국자들의 책임이다.

지난 10년 동안 이나라 경제에서 소득을 얻고 소비생활을 한 모든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가 처한 경제난국에 대해 크고 작은 책임이 있다.

이제와서 외환위기 당시의 정책책임을 맡았던 몇몇 사람을 감옥으로 보내
우리가 잘못된 과거에 대해 반성한다고 생각하면 우리 국민들은 정말 반성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했던 금붙이를 내놓았다고 해서 우리가 위기에서
교훈을 배우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IMF위기라 부르는 오늘의 위기는 바로 우리 모두가 초래한
위기이며 극복해 나가야 할 대상도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모든것을 쉽게 남의 탓으로 돌리고 제몫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이상
위기극복은 어렵다.

우리 모두는 새정부가 우리경제의 고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개혁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실천하기 보다는 과거정부의 실책을 추궁하는데 더 큰 열성을
올리도록 부추겨서는 안된다.

과거를 반성하고 과거의 실책을 추궁하는 것은 개혁을 추진하는데 있어
필요한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실책을 매도하고 응징하여 국민의 갈채에 집착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바로 앞정부를 돌아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의 위기가 세계경제질서 변화와 개방된 경제로 나아가는 와중에서
우리 내부의 모순된 제도와 관행을 해결하지 못한 결과였다면 이제는 바로
그런 모순과 제도와 관행을 교정하고 그동안 누적된 부실을 정리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우리를 왜 이지경에 빠뜨렸느냐고 몇몇 사람들을 가려내는데 지금 이
시간을 소비해서는 안된다.

그러기에는 지금 우리가 에너지를 결집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너무 크고
많다.

우리 경제는 위기를 넘긴 것이 아니다.

또다른 위기를 맞고, 그래서 지금의 정책담당자들을 단죄하려 든다면 누가
소신을 가지고 기업, 금융부실 등 말많고 어려운 구조개혁 작업을 하려
들겠는가?

그리고 이로부터 초래되는 추가적인 비용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기왕 시작한 검찰 수사는 바로 우리 국민 모두를 직무유기로 고발하고,
각자 상당기간 실질소득과 재산의 감소를 감수하고, 구조개혁에 동참하라는
구형을 내리고 종결되기를 바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