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가 아시아 금융센터로서의 기능을 급속히 상실하고 있다.

동남아 통화위기의 영향권에 서서히 들어서고 있다는 얘기다.

싱가포르에서 활동하는 내외국 은행들의 부실채권이 급증하면서 경쟁력이
눈에 띠게 악화되고 있는데다 외국 금융기관들중에는 사업을 줄이거나 아예
철수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일본 다이이치간쿄은행은 20일 싱가포르 현지법인인 DKB머천트뱅크의
조직을 대폭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인도네시아등 주변국을 대상으로 협조융자를 실시하는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담당해왔지만 이 지역이 통화위기에 빠지면서 협조융자 업무가
대폭 줄어들고 있어서다.

이 은행은 앞으로는 개별기업을 상대로 선별적인 금융업무만 유지할
계획이다.

다이이치간쿄외에 다른 일본계 은행들도 조직을 축소하거나 영업규모를
크게 줄일 방침이다.

한국계 은행들도 마찬가지여서 제일은행등은 이미 올해안으로 싱가포르
지점을 폐쇄할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져있다.

동남아 국가에 대한 부실대출로 싱가포르 은행 스스로의 경영난도
심각해지고 있다.

4월 현재 동남아 5개국(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한국 태국 필리핀)에 대한
대출잔액에서 차지하는 싱가포르 은행들의 부실 채권 비율은 이미 3.2%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따라 DBS등 싱가포르 4대 은행들의 1.4분기 순익은 전년도에 비해
25%나 급감했다.

싱가포르는 그동안 정치안정과 인프라 구축에 힘입어 홍콩과 나란히
아시아 양대 금융센터로서의 기능을 수행해왔다.

특히 해외자금을 끌어모아 주변국에 협조융자하는 방식의 "역외(Offshore)"
금융영업은 싱가포르를 동남아 지역의 자금줄로 기능하도록 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이후 한국과 일본금융기관들의 영업력이 약화되면서
타격을 받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동남아시아 지역전체의 불황 여파가 싱가포르
에도 점차 본격적으로 상륙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종태 기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