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철이면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다.

"전력수요 사상최고치"라는 반갑지 않은 기록이다.

그 뒤를 이어 나타나는 표현들도 있다.

"제한송전 위기"니, "전력예비율 급락"이니 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이맘때쯤 정부와 한국전력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전력 공급여력을 어떻게 확보할지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탓이다.

더위를 알리는 징후들이 본격 등장하는 계절이라 발걸음은 더욱 급해진다.

전력 예비율은 "전체 전력공급 능력 가운데 소비되지 않고 남아 있는
예비전력의 비율"로 풀이된다.

예컨대 발전능력이 1천만kW인데 전력수요가 8백만kW라면 예비율은 20%다.

따라서 예비율이 낮다면 송전량이나 수요중에서 하나를 줄여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송전량을 줄인다면 산업현장등에선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생산설비 가동중단으로 연결되는 탓이다.

그렇다고 전력 공급능력을 갑자기 늘릴 수도 없다.

발전소는 뚝딱해서 지을 수 있는 시설이 아니다.

그래서 전력 수요관리라는 차선책이 쓰이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해 올여름 전력수급은 큰 어려움이 없을 전망이다.

전력예비율이 7%대 밑으로 곤두박질치는 사태는 발생하기 힘들어 보인다.

수요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돼서다.

배경은 바로 국제통화기금(IMF)한파.

경기위축을 감안할 때 산업용 전력 수요가 급감할건 뻔하다.

올해 최대 전력수요는 아직 예상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95년 작성된 장기전력 수급계획에 따르면 올해 최대 수요는
3천9백38만kW.

시간대별로 다른 요금을 매기거나 빙축열기기 가스냉방기기 도입을 유도
하는 등의 수요관리책이 뒤따르지 않았을 경우이다.

수요관리가 이뤄질 때 최대 전력수요 예상치는 3천8백39만kW다.

95년 계획수립 당시엔 올해 예상 경제성장률을 7.3%로 잡았었다.

그런데 민간경제연구소들은 올해 경제성장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분석한다.

IMF 탓이다.

따라서 장기전력 수급계획상의 전력수요 예측치는 더이상 가치가 없어진
셈이다.

산업자원부와 한국전력은 장기전력 수급계획을 다시 짜고 있다.

변화된 여건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빠르면 오는 5월께 그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그럼에도 산자부와 한전은 전력수급 사정이 넉넉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올들어 통계로 잡힌 전력수급 상황을 들여다 보면 이같은 예상은 예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가장 최근의 전력 수급통계는 지난 3월에 작성된 "2월중 전력수급동향".

이 자료는 올들어 전력수요가 얼마나 줄었는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지난해 2월 최대수요는 3천36만kW였으나 올해엔 2천8백75만kW로 줄었다.

감소율은 5.3%.

지난해 2월 10.3% 증가율과는 매우 비교되는 수치다.

전력 공급능력은 올 2월이 더 많아졌다.

3천1백99만kW에서 3천3백62만kW로 늘었다.

전력예비율은 16.9%나 된다.

지난해의 경우엔 5.4%에 불과했다.

올들어 2월까지의 전력수급 속사정을 보면 "전력사정 넉넉"이라는 의미가
두드러진다.

산업용은 전체 전력소비를 주도한다.

전체 소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 가량.

해마다 10%이상씩 증가세를 보여 왔다.

하지만 올해엔 그렇지 않다.

지난해 동기대비로 1월에 6.4%의 감소세를 보인데 이어 2월에도 1.4%
줄었다.

금융위기에 따른 기업들의 연쇄도산으로 설비가동이 줄어든 탓이다.

게다가 에너지 절약시책과 IMF사태로 인한 가계 전력소비 위축 등으로
가로등과 일반용 소비증가율도 크게 떨어졌다.

한전은 올 여름도 간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난히 더운 여름이 되겠다는 기상예보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전력공급 능력내에서 수요관리에 최선을 기울이겠다는 전략을
짜놓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