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민 <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

은행장인사가 곧 있을 것이라고 한다.

지난주에 당쪽에서 산은총재가 바뀔 것이라는 얘기를 내놓더니 이번주
들어서는 시중은행장도 몇몇이 포함될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약간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시중은행 주주총회가 끝난지 불과 1개월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
그렇게 느껴진다.

바꿀 심산이었다면 주총때 바꾸었던게 그나마 모양이 낫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서다.

물러날 사람을 생각해서 하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정부 입장에서 그렇게 했던게 모양새가 나았을 것이라고 본다.

단 한주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정부 멋대로 시중은행장을 바꾸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결코 보기좋은 일이 아니다.

주총때라면 어영부영 겉모양이나마 갖출 수 있었겠지만, 지금 은행장인사를
한다면 "정부는 간여하지 않았다"는 소리를 곧이 들을 사람이 있을리 없다.

관치에 멍든 금융때문에 경제전체가 엉망인 상황, 그래서 그걸 시정하려는
제스처만이라도 아쉽기만 하기 때문에 더욱 입맛이 쓰다.

은행장인사는 관치금융의 중심축이다.

인사권이상 복종을 강요하는 확실한 수단이 없고 보면, 집권자가 은행을
다스릴 생각이 없다면 몰라도 그걸 내놓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관치금융에 대한 비난이 워낙 컸기 때문에 최근 몇해동안은 적어도
겉으로나마 그걸 정부에서 행사하지 않으려는 듯한 모양새를 갖추려고
애써온게 사실이다.

만약 정부에서 주총시즌도 아닌 시점에 일부 보도대로 8~10개 은행장을
"물갈이"한다면, 그것은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은행장인사를 정부에서
멋대로 했던 3공시절로 되돌아가는 꼴이 된다고도 볼 수 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바꾸는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한다면 논리이전의
문제이기 때문에 할 말이 없지만, 어쨌든 그것은 이 시대가 지향해야할
금융자율과는 1백80도 다른 방향이다.

지난 2월 시중은행 주총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당시)가 은행인사에
간여하지 말라고 지시했던 것과도 다른 얘기가 된다.

은행장인사설이 나돌자 금융가에선 표적 사정이 이루어지거나 그로인해
"다치는 은행장"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고 한다.

은행장이라는 자리가 교도소로 갈 확률이 매우 높은 자리로 여겨지는게
이상할 것도 없는 최근 몇년간의 실례를 되새겨볼 때 일부 은행원들의
그같은 걱정을 기우라고 하기도 어렵다.

정부가 정말로 대폭적인 은행장인사를 할 생각이라면 우선 그 잣대는
형평성이 있어야 하고 법에 따라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금융기관의 건전한 운영을 크게 해치는 행위"를 했는지 형평성있는
잣대로 측정하고, 만약 그렇다면 법에 따라 업무정지를 명하거나 주주총회에
해임을 요구할 수 있는 감독당국의 권한을 공개적으로 발동하는 것이 옳다.

또 그 후임자도 법절차에 따라 선임해야 한다.

현행 은행법은 은행장후보를 해당은행 비상임이사로 구성된 추천위원회에서
추천, 주총에서 선임토록 규정하고 있다.

은행주 소유제한 등 지배주주가 나올 수 없는 제도아래서 이런 절차로
은행장을 선임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지만, 그나마 절차도 지키지 않고
추천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정부가 은행장을 내정한다면 금융자율은 영원히
구두선이다.

지난번 은행주총에서 은행장이 거의 바뀌지 않자 금융위기에 대한 문책
인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여당쪽에서 그런 주장을 공개적으로 들고 나왔고, 여론의 공감도 없지만은
않았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시중은행장인사를 정부 멋대로 하라는 여론이라고 확대
해석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지금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할 일은 금융을 관치의 사슬로부터 푸는
것이다.

우선 정부와 정치권이 고삐를 놓은 시늉이라도 해야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금융과의 연결고리를 끊기는 커녕 새로 만들어 내려고 야단이다.

국회만 봐도 그렇다.

금융을 재경위와 정무위 두 상임위에서 다루기로 한 것이 그 좋은 예다.

은행 시어머니는 이래저래 늘어만가는 셈이다.

관치금융의 구태를 하루빨리 없애야 한다는 소리는 요란하지만 실제로
나타나는 현상은 그 반대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