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추락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은지 4개월째.

환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한 분석은 많다.

그러나 고도성장과정에서 잉태된 ''모순''에서 찾는 시각은 적다.

김입삼 자유기업센터고문은 바로 그런 모순이 생겨나고 축적되는 현장을
지켜봐온 사람이다.

그의 회고록 ''시장경제와 기업가 정신''을 매주 월요일 시리즈로 연재한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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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의 구제금융을 받게되면서 "한강의 기적"은 세계 앞에 산산조각났다.

평생을 경제단체에 몸담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요즘엔 그래서 "어떻게 이지경까지 됐는가"하는 자탄을 자주한다.

과연 해법은 있는 것인지, 언제쯤이나 다시 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지
울적한 물음만 곱씹고 있다.

나는 이런 초라한 질문들을 갖고 글을 써나갈 것이다.

내가 했던 일을 나열하고 싶지는 않다.

지난 40여년 경제의 흐름 속에서 우리들의 잘못들을 짚어내고 뉘우치는
성찰의 기록이 됐으면 한다.

21세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새로운 구도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아시아의 네마리 용 가운데 으뜸이라던 우리나라가 왜 이지경에 이르게
됐는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나는 "압축성장"으로 특징지워지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꼭 해결하고 지나갔어야 할 중요한 일들을 간과했다는 점을 우선
들고 싶다.

외환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외화부족에 시달린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8.15부터 5.16이후는 물론 수차에 걸친 5개년 계획에서도 국제수지균형은
우리의 최대 목표였다.

그 많은 세월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결국 IMF에 달려가게 된 것
아닌가.

돌반지까지 걷는 "금 모으기 운동"으로 전국이 최근까지 떠들썩했다.

외국 매스컴은 위기극복을 위한 우리의 애국심과 단결력에 경탄했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자.

1907년 국채보상운동과 다른게 뭔가.

일본에 진 빚을 갚으려고 아낙네들은 금비녀를 바쳤다.

노인들은 담배도 끊었다.

한번으로 족하지 않은가.

치욕스러운 건 또 있다.

IMF는 우리에게 구제금융을 집행하면서 "한국은 도대체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했다.

기업경영 정부통계는 물론 공인회계사의 감사보고도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자본주의는 신용을 토대로 움직인다.

신용이 없으면 돈 한푼 빌릴 수 없다.

이번 외환위기 사태에서 신용을 잃는 것은 바로 돈을 잃는 것임을 우리는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신용은 돈이다"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덕목을 중시한 서구자본주의
정신과 "신용을 생명으로 한다"는 개성상인의 상거래규범이 떠오른다.

이같은 기업윤리와 이를 바탕으로 한 기업가 정신이 없이는 세계 중심
국가는 커녕 21세기를 살아가기도 힘들 것이다.

외환이나 신용문제뿐 아니다.

물가 금리 임금 등 국민생활이나 기업 경제운영의 바로미터가 되는 기본
요소들은 수십년째 "미결"이다.

이미 60년대 초에 정비했어야할 과제들이다.

지난 60~70년대 민간 경제계의 거목들과 함께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오늘날 이들 문제가 새삼스러운양 다시 제기되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40여년 전으로 돌아간 듯해 어리둥절하다.

특히 외국기업 유치를 위해 "특수지역설치법"을 제정한다고 하니 70년대
초에 마산수출자유지역 설치를 입안했던 사람으로서 그저 허탈할 뿐이다.

60년대초까지만 해도 절대빈곤에서 벗어나려는 국민의 염원 속에 "관민
협동"은 긍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70년대를 지나며 정권연장 장기집권 독재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관민협동은 정경유착으로 변질돼 갔다.

끊임없는 자기혁신 없이는 어떤 조직이나 권력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자명한 진리를 나는 목격해왔다.

이 기회에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뜯어고치지 않으면 멀지않은 장래에
우리나라는 또 부도위기에 몰리는 비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내가 보고 듣고 꾸민 일들을 더듬어 보려고
한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할 것인가.

경제개발초기 경제주체들의 고민의 폭과 깊이를 먼저 보여주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같다.

독자들은 한세대가 훨씬 지나간 지금이나 그때나 우리 경제주체들의
고민의 내용이 별로 다르지 않은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 필자 약력 ]]

<>1922년 함북 종성생
<>함북 경성고보 졸
<>미 미네소타대 정치학부, 대학원 졸
<>영 런던대 대학원 수료
<>부흥부 산하 산업개발위 보좌위원
<>한국경제인협회 사무국장(62~71)
<>전국경제인연합회 상임부회장(71~81)
<>한국의료보험협의회 회장(71~75)
<>한국투자회사협회장
<>자유기업센터 고문(현)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