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체제는 모든 국민에게 금융시장의 존재와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주었다.

사실 우리는 IMF가 무엇인지 몰라도 잘 살수 있었고 환율에 대해서도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변했다.

우리는 금융시장의 중요성, 그리고 국제금융상황에 대해 민감해진 것이다.

달러 가치가 폭등하면서 얼마 안되는 달러를 사고팔더라도 환율시세를
따지고 시기를 조절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우리는 정작 환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이제 이러한 수단이 확보될 수 있게 될것같다.

현재 설립을 준비중인 한국선물거래소에는 이러한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유용하게 쓰일 원.달러 선물을 상장할 예정이며 이와 아울러
단기및 장기금리선물도 상장, 금융기관과 일반투자자의 환위험및 금리위험
관리에 효율적인 수단으로 제공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 좋지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에 따르면 미국의 시카고 상업거래소(Chicago
Mercantile Exchange)가 원.달러 선물거래를 준비중이라고 한다.

시카고 상업거래소는 세계 최초로 통화선물을 상장한 거래소로 시카고
상품거래소(Chicago Board of Trade)와 함께 세계 선물업계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한국선물거래소가 준비중인 원.달러 선물을 이 거래소가 먼저 상장시킬
경우 우리는 상당한 곤란을 겪을 것이다.

사실 원.달러 선물은 역설적으로 IMF체제로 인해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큰 상품이다.

이를 우리가 시작도 못한채 시카고상품거래소가 먼저 상장할 경우
우리의 선물산업은 치명타를 받게 된다.

특히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가 조금씩 활발해지고 있는 이때에
원.달러 선물이 시카고에 상장될 경우 외국인들은 보다 안심하고 거래할
있는 시카고 거래소를 통해 환위험을 헤지하게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곧 많은 투자자를 유치,조속히 본궤도에 올라야할 한국의 선물산업의
존립기반이 시작부터 위축될 확률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선물거래소는 선물업을 직접 영위할 회원사들이 자금을 출자, 설립을
준비중이다.

그런데 금번 IMF한파로 인해 최초 선물거래업의 내인가를 받은
35개사중에서 20여개사가 이미 이를 포기했고 나머지 회사들마저도 의욕을
잃고 있는 상태이다.

설상가상으로 부산시가 지역경제활성화 차원에서 선물거래소의 유치활동을
벌이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회원사들은 이미 부산유치에 반대하는 쪽으로 의견정리를 끝낸 것으로
알고있다.

오늘날 우리가 당하고 있는 많은 어려움은 금융산업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 효율성이 상실된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따라서 모든 경제문제, 특히 금융에 관련된 문제는 효율성과 자율성의
추구라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경제적인 논리로 풀어가야 할것이며 이는
선물거래소 설립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선물거래소는 금융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인프라다.

이의 설립과 함께 여러가지 상품이 상장될 경우 금융산업을 한단계
도약시킬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며 위험관리수단과 함께 각종 금융신상품을
개발할수 있는 기반이 조성된다.

그런데 선물거래소 설립에 있어서 정부는 전혀 돈을 내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이는 순수한 민간의 프로젝트이다.

금융산업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공공프로젝트가 역설적으로
순수한 민간프로젝트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어려운 환경하에서 자신의 자금을 출연, 이를 추진하는
민간의 의지를 최대한 장려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취해야 할 것이다.

바꿔말하면 거래소 설립이라는 프로젝트를 가장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규제와 개입을 억제하는 동시에 각종 정책적인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것이다.

이래야만 선물회사들이 기꺼이 자금을 출연, 거래소 설립을 추진할
것이고 이의 성공은 국내금융산업의 앞날을 밝게 만드는 역할을 할것이다.

외국거래소가 원.달러선물의 상장을 추진한다는 것은 좋은 징조일 수도
있다.

이는 그들이 이 상품의 향후 전망을 좋게 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원.달러 현물시장은 서울에 있다.

현물시장이 서울에 있는 이상 그들이 가져갈 수 있는 물량은 한정되어
있다.

빨리 대응할 경우 아주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제 방향은 명확하다.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 배려하에 조속히 선물거래소를 설립하고 원.달러
및 금리선물을 상장시키도록 해야한다.

처음부터 외국상품을 우리거래소에 상장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우리
금융시장의 상품은 우리나라 거래소에서 성공적으로 거래되도록 해야하지
않겠는가.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