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23일 차기정부의 국무총리에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 감사원장에 한승헌 변호사를 공식 지명하고 야당의 협조를 요청
했다.

이에 대해 야당인 한나라당은 앞서 확정한 "김종필총리 불가" 당론을
변경할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 국회인준이 순탄치 않을 것같다.

여야를 막론하고 법절차에 따라 이뤄지는 국회에서의 정당활동에 대해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 경제 현실을 생각할 때 총리인준을 둘러싸고 여야가
격돌할 경우 초래될 결과에 대해서는 국정을 수임한 신여당뿐 아니라 대다수
국민이 크게 우려하고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국정공백이 생기고 정치불안이 야기돼 국민경제는 그야말로 걷잡을수 없는
혼란에 더욱 깊숙이 빠질수 있다.

신임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예정대로 25일 국회에서 인준되면 곧장 총리의
제청을 받아 26일 내각명단이 발표된다.

그러나 만약 총리인준에 차질이 생기면 국정공백은 불가피해진다.

한나라당의 김종필총리 인준거부는 명분이 약하다.

우선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 처음으로 구성하려는 정부진용을 정당의
이해 때문에 야당이 발목을 잡는 것 자체가 정도는 아니라고 해야 한다.

더구나 지난번 대선에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공동정부 구성을 공약했고
그것이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면 김종필총리도 이미 국민의 동의를 받은
것으로 간주돼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원내 의석의 우세를 빌미로 이를 거부하는 것은 정치도의로 보나
국민경제에 미칠 파급영향으로 보아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정가의 관측대로 한나라당의 반대가 당내의 계파간 득실이나 3월 전당대회
를 의식한 선명성경쟁 등이 큰 이유라고 한다면 더욱 설득력이 없다.

원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거대야당으로서 국정책임의 상당부분을 분담해야
할 정당으로서 매우 무책임한 처사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지금 우리 경제는 "3월 대란설"이 나돌만큼 매우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다.

이런 때 총리인준을 둘러싸고 국정에 공백이 생기거나 정치불안에
휩싸인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구구한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여러차례 지적된바 있지만 지난번 뉴욕에서 있었던 단기외채의 만기연장협상
은 원칙에만 합의했을뿐 은행별 실행협상은 시작도 되지않은 상태다.

일부 외국은행들은 뉴욕협상의 금리조건 등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몇단계가 오르긴 했지만 우리의 국가신용도는 아직도 "투자적격"에 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들은 도산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실업자는 갈수록 늘어 서민
생활이 엉망인데도 국회가 주도권싸움에 몰두하고 있을 때인가.

새정부출범의 당연한 절차를 지연시키는 일은 우리경제에 큰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크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혼란이 초래될 경우 그 책임은 한나라당에
돌아갈 것이며 따라서 이번 거부당론은 한나라당 자신을 위해서도 이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