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전 충북대 교수>

미국 동전에는 "신을 믿는다"는 말이 새겨져 있고 링컨이나 케네디의
얼굴이 보인다.

프랑스 동전엔 "자유 평등 박애"가 있고 자유의 여신상도 대부분 새겨져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것엔 국시라 할 만한 문구없이 1백원, 50원이라는
화폐단위만 눈에 띄고 거북선이나 율곡 선생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전제군주를 무너뜨리고 백성의 나라를 세운 프랑스는 혁명 당시 그들의
국시가 면면히 계승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화폐엔 그런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요사이 프랑스에선 "어린왕자"의 작가이자 2차대전에 자원 참전했다 산화한
생텍쥐페리의 모습이 50프랑짜리 동전에 들어갔다.

정치가들이 차지했던 그 자리에 이제 문인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부존자원도 부족하고 국토의 분단이 아직 계속되고 있는 이 자그마한
한반도가 분수도 모르고 세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다느니 중심국가가
된다느니 하는 허풍치던 위정자들은 먼저 자신을 알고 상대를 알려하지
아니한 우를 범했다.

국가의 경영에는 경제도 중요하지만 문화 예술 등 국민의 정신적 풍요가
어느면에선 물질보다 앞서야만 균형이 잡히고 건전한 국가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화폐에도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하는 국시같은 이념이 없다는 것은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도 불행하다고 하겠다.

국시는 아닐지라도 거북선 모습이 들어가있는 것은 그나마 위안을 준다.

원균이란 졸장이 수백척의 병선을 한 번의 해전에서 잃고난 뒤 충무공이
다시 제독에 기용되었을 때 "신에게는 아직도 13척이나 남아있습니다"며
물러가는 왜군을 추격, 노량대첩을 이끌어낸 그 투지와 의기는 지금의 IMF
난국을 넘기는 정신적 지주가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의 사가가 쓴 이순신전에는 "넬슨은 감히 충무공에 비할 수 없다"며
충무공의 치밀한 작전과 준비 등을 높이 사고 있다.

우리 화폐를 다시 생각해 볼 때, 예를들어 단군 시조의 모습을 새기고
홍익인간이란 국시를 새겨넣으면 어떨까.

링컨이 주창한 주권재민설은 널리 여러 백성에 유익함이 된다는 홍익인간의
이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알렉산더라고 할 만한 광개토대왕의 모습을 새겨도 좋을 것이다.

또 율곡을 길러내신 신사임당을 각인하는 것도 참신하다고 하겠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나라를 참으로 사랑하는 분들이 태어난다.

우리 동전을 대할 때마다 이런 분들의 자취를 생각하며 현재 경제위기를
넘기는 데 위정자들이 언제라도 초개같이 목숨을 내놓는 각오로 국정에
임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