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 기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신혼부부의 결혼초기를 일컫는 말이다.

새롭게 인생을 출발하는 두사람이 결혼 초기에는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농도가 최고조에 달해 오직 행복만 넘치는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하다.

이 말이 미국에서는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정책결정이나 집행에 대해
견제세력인 야당이 비판을 자제하는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주 쓰인다.

기왕의 질서를 한꺼번에 바꿀 수 있는 급진적인 정책이나 중대한 결함에
대해서는 이 기간동안이라도 가차없는 비판을 가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왠만한 사안에 대해서는 보통 이같은 관행이 적용된다.

의회민주주의가 최고로 발달한 미국의 관행을 지금 거론하는 것은 국제
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으로 외환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고 새정부의 출범을
코앞에 둔 우리에게도 이런 기간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당선이 확정되고나서 말도 많던 ''외환위기''의
실상을 파악한 후 "밤잠을 못 이뤘다"고 실토했던 어려운 상황은 일단
극단적인 사태를 벗어났다.

그러나 위기의 ''불씨''가 완전히 없어진 상태는 아니다.

언제 어느때 ''대화재''로 번질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국회의 모습은 어떤가.

비록 정식으로 새정부가 출범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국정을 맡고 있는
김당선자측이 IMF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처리하려던 대부분의 법안과
세수감소에 따라 재편된 추경예산안은 거대야당의 반대에 부딪쳐 표류하고
있다.

회기는 이틀밖에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물론 회기야 늘릴 수 있다.

그러나 늘려본들 무엇하겠는가.

거대야당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한 국회공전은 불을 보듯 뻔하다.

50년만의 정권교체로 집권여당에서 야당으로 변신한 한나라당이
추경예산안 심의를 늦추고 인사청문회를 첫내각부터 적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물론 억지는 아니다.

오히려 수긍할 만한 점이 있다.

어차피 2주일정도후면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것이니 추경예산안 심의는
새내각을 상대로 해야 하고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선거공약이었으니 그대로
하자는 주장에 논리적 허점은 없다.

그러나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나름
대로의 원칙을 지키려다가 이도 저도 다 어려워진다면 아무리 논리적으로
맞는 주장이라도 한 발 뒤로 물러설줄 알아야 한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보여주고 있는 최근의 행위를 무작정 받아들이자는
것은 아니다.

지적할 것은 지적하되 보다 큰 목표를 위해서는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선 김당선자가 청와대비서진구성에서 보여준 인사방식을 보자.

후보 및 내정자를 미리 발표한뒤 여론의 검증을 받도록 한 것은 우리
헌정사에 처음있는 일로 일단 신선하다는 반응을 얻기는 했다.

김영삼정부가 출범초기 철저한 비밀에 붙였다가 깜짝쇼 인사로 정책혼선을
드러내고 충분히 검증받지 않은 장관들이 ''단관''으로 불릴 정도로 자주 바뀐
점을 고려하면 여론의 검증과정을 거치도록 한 점을 과소평가 할 수 없다.

그러나 검증기간이라는 것이 불과 2~3일에 불과해 과연 충분한 여론
수렴을 했는지 의문이 든다.

일부에서는 새정부 첫 각료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무산시키기 위한
편법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후보명단에 올랐다가 탈락된 인사들이 입을지 모르는 불명예나 상처도
우리의 정치풍토에서는 충분히 예견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당선자대변인의 말처럼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방식의 신선함에는 일단 점수를 주고 싶다.

이처럼 몇가지 아쉬운 점을 남기고 있는 집권당에게 ''허니문 기간''을
주자는 것은 한 두가지를 지적하다가 전체를 망가뜨리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뜻이다.

그만큼 우리의 사정은 다급하다.

자고나면 들리는 것은 기업의 부도 소식이고 직장을 잃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임금 30%삭감은 일상적인 이야기가 됐고 그나마 직장에 남아있게 된다면
행운으로 받아들이는게 보통사람들의 처지이다.

''제2의 6.25''라는 국가위기를 넘기기위해 필요한 것은 노.사.정의
대타협에 이은 여야의 대타협이다.

새로운 정부가 순조롭게 출범하도록 거대야당의 협조가 필요하고 대외
신인도를 높이기 위해서 IMF와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

노.사.정 대타협에 참여했던 민주노총이 고용조정의 법제화 등에 반대하고
있는 등 국회밖에서도 새로운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거대야당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집권당을 도와준다면 큰 어려움을 없을 것이다.

불이 나면 불부터 끄는 것이 순리다.

누가 불을 꺼야 하는지 그사람이 불을 끌 자격이 있는지 검증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집권당에게 허니문기간을 주자는 것도 일단 불부터 끄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들에게 요구하자.

실업자를 줄이라고.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