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로 국가부도 일보 직전에 몰리고 있는 인도네시아가 11일
루피아화 환율을 미달러에 대해 일정수준으로 묶어두는 이른바 통화위원회
제도를 실시키로 발표한데 대해 국제금융계는 비판의 목소리를 감추지 않고
있다.

80년대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통화위원회와 같은 달러연동 고정환율
제도를 실시했던 칠레나 멕시코정부가 금리의 수직상승과 자국화폐의 과대
평가로 결국은 손을 들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하르토 대통령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현재의 중앙은행 제도를
홍콩과 싱가포르가 시행중인 통화위원회 제도로 변경하고 달러연동 고정
환율제를 실시키로한 것은 어떻게하든 외환위기를 해결해보고자 하는 의도다.

수하르토 대통령은 차남 밤방 트리하트모조와 가까운 미 존스홉킨스대
스티브 행키 경제학 교수로부터 이 아이디어를 빌려왔다.

행키 교수는 최근 수하르토 대통령에 보낸 보고서에서 현재 달러당
9천5백루피아선을 오르내리고 있는 자국통화 환율을 5천5백루피아 정도로
고정시켜 놓으면 인플레와 고금리를 잡을 수 있고 기업부도 사태도 완화될
것이며 성장률은 높아지고 실업은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월가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같은 "묘책"이 외환보유고 고갈상태에 빠져있는
인도네시아에 "쥐약"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달러연동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려면 총통화의 일정비율에 달하는 달러화를
항상 보유해야 하는데 그렇지못한 인도네시아가 이를 시행한다면 국내외
투자자들의 루피아투매를 유도해 이자율이 치솟는 등 엄청난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멕시코의 경우 88년 살리나스 대통령 집권후 페소화를 달러당
3.4페소로 고정시켜 물가안정과 고성장을 추구했지만 페소화의 과대평가는
94년 외채위기를 초래했다.

또 칠레도 피노체트 정권이 78년 환율을 달러당 39페소에 고정시키는
정책을 실시해 일시적으론 물가안정과 성장을 달성했지만 결국은 82년
외채위기 상황을 맞았었다.

월가는 수하르토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 관료들까지 극력 반대하고 있는
고정환율제에 현혹돼있는 것은 현 외환위기에 대한 좌절감에다가 미국교수를
앞세운 자녀들의 감언이설에 또다시 귀가 먼 탓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는 IMF개입 이후에도 루피아화 가치가 70%이상 폭락하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IMF는 물론 자신의 부하관료들에게 조차 노골적인
불신을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가는 수하르토의 이런 처사에 대해 "정통의사가 처방한 쓴 약이 당장
효과를 내지못한다 해서 둔쿤(인도네시아의 무속치료가)에게 매달려
보겠다는 자포자기나 마찬가지"라고 꼬집고 있다.

<뉴욕=이학영 특파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