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재계의 심한 반발속에 혼선을 빚어왔던 빅딜(대기업그룹간 대규모
사업교환)은 일단 수면아래로 잠복했다.

당선자측이 인위적인 빅딜은 추진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대위가 기업 스스로의 구조조정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서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비대위가 김대중 당선자에게 보고한 "기업구조조정 촉진안"에도 빅딜
문제는 거론돼 있다.

재벌정책을 가늠할 수 있는 이 구조조정안은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시행상의 문제점도 많을 것으로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재벌정책의 방향과 개선점을 진단하기 위해 이 분야 전문가들을 초청,
박영배 부장의 사회로 좌담회를 가졌다.

이날 좌담회에서는 정부의 대기업정책은 즉흥적인 탁상공론이어서는
안되며 우리기업이 성장해온 배경과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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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 =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
신봉호 <서울시립대 교수>
이두원 <연세대 교수>
박영배 <사회 : 편집국장석 부장> ]]]

<>박영배 부장 =최근 김대중 당선자측에서 대기업간 대규모 사업교환,
즉 빅딜을 기업이 자율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당초의 강한
의지에서 한발 물러섰습니다.

우선 빅딜이 논의되게 배경은 어디에 있습니까.

<>좌승희 원장 =금융부문 뿐아니라 실물부문의 구조조정도 절실한
형편입니다.

따라서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위한 방편으로 빅딜이 거론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 내기위해서는 국가위기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
있는 기업이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측면에서도 빅딜이
나왔다고 봅니다.

<>신봉호 교수 =동감합니다.

다만 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절차나 방법에 대해 김당선자측이 고민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중 하나가 빅딜입니다.

최근에는 정부 주도하의 인위적인 빅딜은 안된다는 재계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정부가 당초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듯합니다.

<>이두원 교수 =김당선자측에서는 출범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위해
서둘러 빅딜을 요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급보증해소 결합재무제표도입 등 재벌정책중 가시적 성과가 큰 것이
빅딜이기 때문입니다.

의도는 좋다고 생각되지만 너무 강하게 밀여붙였던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박부장 =그렇다면 여전히 빅딜의 불씨가 상존한다고 봐야 합니까.

<>이교수 =불씨라기 보다는 가능성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좌원장 =구조조정을 가로막는 현행 제도하에서는 기업들에게 빅딜을
하라고 하는 것은 곧 법위반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김당선자측이 요구하는 빅딜은 과거의 산업합리화나 부실기업
정리와 같은 맥락이라고 봐야 합니다.

정부의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정부가 빅딜을 요구하기에 앞서 자율적인 빅딜을 위한 시장여건
조성에 주력해야 합니다.

<>신교수 =정치가 입장에서 빅딜은 매력적입니다.

주택복권 당첨과도 같은 화려한 목표입니다.

그런 만큼 실현가능성은 낮습니다.

하지만 제도적 여건이 갖춰지더라도 빅딜이 성사되기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빅딜은 한마디로 사업과 사업을 맞바꾸는 물물교환입니다.

상품의 물물교환도 쉽지않은터에 주주 채권 투자자관계등이 얽혀있는
상황에서 사업교환이 원활히 일어나기란 쉽지않을 것입니다.

<>좌원장 =빅딜 가능성이 낮은 것은 상품시장에서의 경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품시장에서의 경쟁이 막혀있는 상황에서는 기업들에게 사업교환의
절박성이 없습니다.

<>이교수 =빅딜이 산업합리화의 재판이 될까 우려됩니다.

과거 산업합리화는 부실기업 정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필요한 재벌간 빅딜은 부실기업 교환이 아닙니다.

따라서 정부는 빅딜을 위한 환경조성에 주력해야 하고 이를 위한 정부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선 금융환경이 변하면 기업도 변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둘째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 상호지급보증 해소 등 경영투명성 제고
등 기업 스스로의 변화도 구조조정의 채찍이 될 것입니다.

셋째 외국자본에 대해 문을 열어야 합니다.

비상경제대책위가 적대적 M&A를 올해중에 허용키로 한 것은 바람직한
조치입니다.

적대적 M&A는 기업에게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부장 =기업의 구조조정 지원책중에서도 적대적 M&A의 허용은 거센
해일이나 다름없습니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예상됩니까.

<>좌원장 =외국기업들은 아직 한국기업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상호지급보증의 해소와 결합재무제표 작성이 상당히 진척돼야만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가 활성화될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금융기관이나 투자자의 기업 감시체제는 물론 M&A시장
활성화를 통해 기업끼리의 감시체제를 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수입승인제도 수입선다변화 폐지로 국내시장의 경쟁을 활성화하는 등
제반여건 조성만 갖춰지면 기업의 구조조정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입니다.

다만 현재 이러한 제도적 장치에 대한 논의보다는 기업의 행태에 대한
규제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유감입니다.

<>이교수 =외국인들이 한국시장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정작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개별기업의 재무제표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인데 결합재무제표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호지급보증 현황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기업정보가 필수적입니다.

또 포괄적 정보의 신뢰성을 위해서는 회계감사제도 개선은 물론
소액주주에 대한 회계장부 공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게다가 배타적인 국민여론도 바뀌어져야 합니다.

외국기업이 국내에서 남긴 부가가치의 대부분은 국내에 그대로 남기
때문에 외국자본에 종속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잘못입니다.

<>신교수 =외국자본의 시장접근이 어렵다는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진입장벽 등을 제거해 상품시장을 경쟁적으로 유도하는 것은 상당한
시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금융개혁이나 M&A시장 활성화는 단기간내에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상호지급보증과 상호출자등으로 얽혀있어
외국인들이 M&A를 꺼리는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규모로나마 일단 M&A가 일어나면 상당한 파급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좌원장 =외국인의 국내기업 M&A는 외환.외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최근의 고환율.저주가는 외국인에게 M&A를 위한 유리한 조건입니다.

하지만 외국인의 M&A에는 아직 제도적으로 정비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있습니다.

<>신교수 =국내기업들이 자기들끼리 사업교환을 하면 특정 그룹이 자동차
조선 등을 독식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하지만 여기에 외국기업을 끌어들이면 경쟁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말레이시아의 경우 경상수지 적자가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와 비슷한
국내총생산(GDP)의 4~5%수준이었으나 외국인직접투자가 월등히 많아
외환위기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습니다.

<>좌원장 =외국인직접투자 확대를 통한 외환위기 극복은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갚아야할 외채가 아니라는 점에서 좋은 지적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국내기업의 입장에서 적대적 M&A에 대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 해소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교수 =M&A활성화를 위해서는 상호지급보증 해소는 물론 기업의
지배구조도 개선돼야 합니다.

그룹경영에 대한 의사결정이 총수의 독단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상호지급보증이 해소된다해도 외국인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기업의 다각화도 바로 이같은 지배구조에서 비롯됐습니다.

<>신교수 =재벌의 무분별한 다각화는 지배구조 보다는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서 찾아야 합니다.

기업이 특혜를 누리다보니 총수가 전횡하더라도 견제를 받지 않은
것입니다.

상호지급보증이 해소되면 M&A가 활성화될 것입니다.

다만 급격한 지급보증 해소는 국가경제 전체에 적잖은 타격을 주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무리한 지급보증 해소보다는 M&A활성화로 기업의 구조조정을
유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좌원장 =우리나라의 기업여건에서는 다각화가 최선의 경영전략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산업정책이라는 명분으로 신규사업에 대한 진입을 제한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회만 주어지면 사업선점을 위해서라도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동차 유화 제철산업 등이 모두 그렇습니다.

따라서 국민정서에 편승해 기업의 행태를 비난하기 보다는 이렇게 된
원인을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교수 =현상황에서 기업만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수익이 아니라 외형에 따른 은행의 대출관행이 기업의 무리한 확장을
조장했습니다.

따라서 금융이 변하면 기업도 자연스럽게 변할 것입니다.

또 기업이 파산하더라도 정부가 구제해주지 않으면 노동계도 변하게 될
것입니다.

<>좌원장 =재벌 총수에 대한 사재출자 요구는 자본주의 원칙에 맞지
않습니다.

금융실명제가 실패하게 된 것도 재산권에 대한 보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교수 =지금과 같은 위기에서는 총수의 사재 출자는 설득력을 갖는다고
봅니다.

기업의 빚규모 등에 비하면 적은 액수더라도 소비자는 물론 투자자에게
총수가 기업회생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결합재무제표 작성으로 기업의 거품을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그동안 기업들은 계열사간 이전소득이나 분식등을 통해 덩치를
부풀려 온 게 사실입니다.

<>좌원장 =결합재무제표 작성으로 기업의 거품이 빠지면 기업의
대외신인도가 크게 낮아질 것입니다.

또 조세수입의 감소문제도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신교수 =대외신인도가 떨어질대로 떨어진 상태여서 큰 비용없이
결합재무제표를 도입할 수 있는 적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조세결손은 미미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교수 =결합재무제표는 거품을 빼자는 의도도 있지만 무엇보다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것입니다.

<>신교수 =김당선자측이 계열사간 지급보증에 대해 벌칙금리를 부과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봅니다.

일종의 누적적 벌칙인 셈인데 하위 그룹일수록 지급보증액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이들 재벌의 파산이 우려되고 국가경제 전체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또 기업의 구조조정은 금융개혁과 함께 진행되어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이교수 =기업 구조조정과 금융부문의 개혁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봅니다.

따라서 금융부문의 개혁에 이어 기업, 노동시장의 개혁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