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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F시대 재테크 '수익증권'] 실세금리 연동 고수익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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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에도 아랑곳없이 증권사들은 공사채형 수익증권을
    판매하느라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다.

    실세금리가 고금리상태를 지속함에 따라 단기고수익을 노릴 수 있는
    단기공사채 수익증권의 인기가 절정에 달한 것이다.

    이를 반영해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수익증권 전담팀까지 만들어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 왜 인기를 끄나 =단기형을 중심으로한 공사채형 수익증권이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것은 마땅한 대체상품이 없기 때문이다.

    실세금리가 높은 상황이어서 주식투자보다 채권상품투자가 유리한데다
    초단기로 투자해도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증권사들이 판매하는 공사채형 수익증권과 비슷한 상품으로 인기를 끄는
    것으로는 은행권에서 판매하는 신종적립신탁을 들 수 있다.

    이는 은행마다 연 21~23%선의 예상수익률을 제시하고 있지만 투자기간이
    6개월이상이다.

    반면에 증권사들이 판매하는 머니마켓펀드(MMF)는 실적기준이긴 하지만
    투자기간에 상관없이 단 하루만 맡겨도 연 23%수준의 초단기고수익을
    자랑하고 있다.

    증권사 수익증권 판매담당자들은 "실세금리가 떨어지는 상황이라면
    단기공사채에 투자했던 자금을 장기공사채로 옮기는 것이 유리하지만
    요즘같이 높은 금리가 유지되는 상황에선 단기형이 유리하다"며
    "단기공사채를 찾아 몰려드는 고객들을 상대하느라 눈코뜰 사이가 없다"고
    말했다.

    <> 메리트는 무엇인가 =단기공사채 수익증권의 가장 큰 장점은 여유자금을
    언제든지 자유롭게 입출금하면서도 단기간에 고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이다.

    대개 금융기관에 일정기간 돈을 맡겼다가 약속한 만기가 되기 전에 돈을
    찾게 되면 턱없이 많은 해지수수료를 물어야 하지만 최근 증권사들이 팔고
    있는 MMF같은 상품에는 이같은 수수료가 없다는 얘기다.

    또 설령 1개월이상짜리에 환매수수료가 있는 상품의 경우라 하더라도
    1년이상 묶이는 자금이 아니어서 여유자금을 굴릴 수 있는 기간을 고려해
    투자하면 높은 수익이 돌아온다는 얘기다.

    실제로 단 하루만 맡기거나 1개월미만동안 투자하는 것보다 3개월정도
    투자하면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게다가 신분증과 도장을 가지고 증권사 종합계좌에 자금이체 약정을
    한번 맺어 놓으면 그 다음엔 일일이 증권사를 찾지 않고서도 전화 한통화로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이같은 부대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 선두주자는 MMF =증권사들이 공사채형 수익증권으로 돌풍을 일으킨
    대표상품은 역시 MMF다.

    증권사들은 지난 96년 중반부터 수익증권을 판매하기 시작했지만 MMF가
    고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지난해 11월의 일이다.

    그이전에는 MMF에도 투자한지 30일이 안되어 출금하면 일정한 환매수수료가
    있어 사실상 1개월이상 투자상품으로 못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11월초에 환매수수료가 완전히 없어진데다 IMF의
    영향으로 실세금리가 치솟으면서 각광을 받게 됐다.

    때문에 단 하루만 맡겨도 환매수수료 없이 돈을 불릴 수 있는 초단기
    고수익상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상품은 콜론이나 CD(양도성예금증서) CP(기업어음)등 단기상품에 투자해
    실세금리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작년말의 경우 증권사들이 판매하는 MMF의 예상수익률이 매일 1%포인트씩
    올라가는 기현상을 연출하기도 했다.

    실세금리가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은 때문이다.

    예컨대 연 16%를 예상하고 MMF에 투자했던 고객이 1주일도 안되어 연 20%를
    넘는 상품으로 둔갑하자 이미 가입했던 자금을 꺼내 새로 투자해야 할
    정도였다.

    현재 증권사와 투신사들이 판매한 MMF잔고는 약 20조원에 달한다.

    < 손희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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