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충격이후 금융시장마비에 따른 자금난과 살인적인 고금리, 여기에
자재값폭등까지 겹치면서 주택건설업체들이 무더기로 도산하는 등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말 청구에 이어 극동건설 나산종합건설 보성 등 굵직굵직한
업체를 포함, 올들어서만 하루 16~17개의 주택업체가 쓰러지는 등 부도
도미노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남아있는 주택건설업체들도 올해 주택공급물량을 대폭 줄이고 있고
이미 계획을 잡아 놓았던 분양사업도 잇따라 포기하고 있다.

이에따라 주택공급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업계
전반에 공멸의 위기감 마저 확산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무더기 부도사태가 지속될 경우 주택공급이 급속히 줄어들고
2~3년후에는 심각한 집값폭등에 직면할수 밖에 없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주택산업기반의 몰락은 앞으로 일반서민의 주거안정을 크게 위협할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이에 한국경제신문은 허진석 대한주택건설사업협회장(동성종합건설
회장)과의 긴급대담을 통해 주택업계가 직면한 현실은 어떤 것인지,
현실성 있는 대책은 무엇인지 등을 들어봤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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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추창근 < 사회2부장 > ]]

-우성 건영에 이어 지난해말 국내의 대표적 주택전문업체인 청구가
무너지고 올들어서도 주택업계의 부도는 매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경영현장에서 느끼는 위기 상황은 어느 정도 입니까.

<>허진석 회장 = 지난해 12월 한달동안에만 54개 주택업체가 부도를
냈고 올들어서도 지금까지 2백개에 가까운 업체가 무너졌습니다.

이같은 부도 러시는 설을 앞두고 절정을 이룰 것입니다.

3월 대란설도 나돌고 있고요.

IMF 체제 아래서 적어도 절반이상, 또는 전체의 70%에 가까운 주택업체가
쓰러질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는 실정입니다.

이같은 위기감 때문인지 "부채가 더 늘기 전에 미리 손을 터는게
낫다"라는 자포자기식 해법마저 진지하게 들릴 정도입니다.

-남아 있는 업체들도 공사를 중단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는데요.

<>허회장 = 업계에서는 지금 "아파트를 많이 건설하는 기업순서가
부도순서" "지으면 지을수록 적자가 커진다"라고들 합니다.

공사를 계속하려면 금리 40%대의 자금에다 이미 30%이상 오른 자재를
투입해야 하는데 적자를 피할 도리가 없지요.

자재비는 환율인상분이 반영되면 상반기중 1백%까지 추가인상될 것으로
보입니다.

공사를 계속하고 싶어도 돈과 자재를 구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공사를 계속하면 1백억원의 적자를 감수해야 하지만 지금 공사를
중단하면 50억원 적자로 막을 수 있게 현실입니다.

-업체들이 신규 주택공급도 대폭 줄이는 추세입니다.

앞으로 심각한 주택공급 부족현상이 발생하지 않을까요.

<>허회장 = 그게 가장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현재 전국에서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는 모두 1백20만가구 정도인데 이중
70%이상이 상반기중 공사를 중단할 것으로 보입니다.

신규사업은 아예 엄두도 못내고 있고요.

지금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향후 2년간 주택공급량이 급감할 것입니다.

주택 수급불균형에 따른 휴유증은 그 뒤에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지난 89년 집값 파동때 17가족이 비관자살한 사실을 모두 기억할
것입니다.

2~3년뒤에는 그때보다 더 심각한 집값폭등사태가 우려됩니다.

-다른 산업에 비해 주택업계의 자금난이 유난히 심한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허회장 = 주택업계는 지금 미분양주택 9만가구에 약 4조5천억원이
자금이 묶여있고 사업부지매입에도 선투자를 해와 진작부터 자금난을 겪어
왔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IMF한파가 밀어닥치면서 금융권의 추가대출이 거의
중단됐고 그나마 생명줄이었던 입주예정자들의 분양중도금마저 제대로
걷히지 않아 최악의 자금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입주 예정자들의 중도금 납부실적이 저조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허회장 = 그동안 약 14만가구에 대해 5조원가량의 중도금을 지원키로
한 할부금융사들이 재원고갈을 이유로 신규대출과 기존약정대출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할부금융사도 정부의 금융 관련법에 의해 생겨난만큼 다른 금융기관에
취해진 특별대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다 대출금리는 25~30%로 크게 오른 반면 중도금 납부 연체이지율은
17~20%에 그치고 있어 입주예정자들이 금융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도금
납부를 미루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분양계약을 해지하는 소비자까지 상당수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도금 납부지연과 해약사태를 방지하고 업계가 자재비 폭등에 따른
부담에서 벗어날수 있는 대책이 있다면.

<>허회장 = 시중은행과 주택할부금융사의 중도금 대출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도록 약 5조원 정도의 정책자금을 조기에 지원해줘야 합니다.

또 건실할 주택업체의 일시적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국민주택기금에서
한시적으로 운전자금을 지원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함께 중도금과 잔금에 대한 연체이자율을 실세금리수준으로 상향
조정해야 할 것입니다.

"분양가 상시 연동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정부가 실제 원가를 무시한 표준건축비를 강요해 업체들이
원가이하의 건축비를 산정하고 있다는 고충은 있겠습니다만 주택업체들도
사업용으로 취득한 땅에서 상당한 차익을 남긴다는 얘기도 많습니다.

<>허회장 =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제가 경영하는 동성종합건설의 경우 지난 94년 경기도 광주군 상현리에서
아파트를 짓기 위해 평당 39만원으로 2만여평을 샀습니다.

지난해 연말께 최종 사업승인을 앞두고 토지가격을 감정한 결과 평당
1백40만원으로 나왔습니다.

평당 1백만원이 남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업시행까지 4년간 들어가는 금융비용과 단지내의 학교용지 및
도로등을 지방자치단체에 기부채납하는 것을 계산에 넣으면 순수
사업부지에 대한 평당 조성원가는 1백90만원 가량으로 나왔습니다.

결국 땅에서도 손해를 보고 있는 겁니다.

-정책자금 지원 및 연체이자율 실세금리화, 국민주택기금에서의
운전자금 지원, 분양가 상시연동제 등 단기적 처방외에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무엇입니까.

<>허회장 = 무엇보다 주택가격에 대한 규제를 철폐(분양가 자율화)하고
외국의 경우처럼 장기저리의 주택금융을 활성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가 수도권지역에 대한 분양가자율화 의지를 밝힌
것은 다행입니다.

92년이후 주택가격이 안정세를 유지해 왔고 IMF 한파로 부동산 경기가
극도로 침체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자율화 시행의 적기라고 판단됩니다.

주택임대업도 활성화해야 합니다.

현행 제도는 5가구 이상을 확보해야 임대업자로 인정, 세제혜택을 주고
있는데 이는 소규모 자본의 임대업 진출을 제한하는 규제입니다.

주택임대업자의 등록범위를 2가구까지로 넓혀야 합니다.

직장을 은퇴한 사람이 퇴직금 등을 갖고 주택을 추가 구입한뒤
임대소득을 올릴수 있도록 하는 것도 복지정책입니다.

-수도권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계획이 발표되면서 집값이 오르지
않느냐는 우려가 많습니다.

이에따라 서민들의 내집마련 꿈이 멀어지고 청약예금에 가입한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허회장 = 청약예금의 경우 제도도입의 취지가 아파트 청약권을 순위에
따라 보장해 준다는 것입니다.

프리미엄이나 시세차익을 보장해 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분양가규제가 계속되면서 청약통장이 마치 프리미엄을 약속하는
보증서가 됐고 결과적으로 주택시장을 크게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분양가는 묶여 있는데 분양이 이뤄진후에는 곧바로 아파트값이
시장기능에 맡겨져 수천만원씩의 차익이 개인의 몫으로 챙겨지고 이런
왜곡구조가 투기심리를 부추긴 것입니다.

지난해부터는 서울뿐 아니라 수도권 지역에서도 채권입찰제가 시행돼
청약통장을 갖고 있더라고 커다란 시세차익을 얻을 수 없게 됐습니다.

분양가가 자율화되더라도 지금보다 10%이상 올릴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오리혀 채권을 써내는 것보다 싸게 분양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업계의 구조조정도 시급한 과제인 것으로 보입니다.

<>허회장 = 면허개방후 업체가 지나치게 난립한 것도 사실이고
거품경영을 해온 부분도 있습니다.

매출액 위주의 경영에서 실속 경영으로 전환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가격 규제가 폐지되면 그야말로 적자생존의 원리가 적용될 것입니다.

원가와 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대신 최고의 상품을 내놓는 업체만이 살게
될 것입니다.

주택업계가 구조조정을 하는데는 약 3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간중 주택업체들은 전업화.전문화의 길로 가야 할 것입니다.

시공은 건설회사에 맡기고 주택업체는 택지확보 및 마켓팅에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 정리 = 김상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