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상 <무역투자진흥공사 사장>

IMF시대를 맞아 해외 한국무역관들은 전보다 더 분주한 새해를 보내고있다.

2월초에 서울에서 개최되는 "수출구매상담회"에 현지 수입상의 참가신청이
쇄도하고,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국에 대한 투자문의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구매상담회는 처음에는 수입상 5백명유치가 목표였으나 현재 1천명이
넘어서 당초 예약했던 회의장이 넘쳐 부득이 일부 사무실까지 써야할
형편이다.

투자문의도 기존의 단독 또는 합작투자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인수-합병
(M&A)에 대한 문의가 늘어나고 있어 긴급히 본사에서 별도의 업무지침을
마련해 주어야만 했다.

바야흐로 IMF시대의 변화를 외국의 기업현장에서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수출과 외국인 투자는 우리경제가 IMF고개를 넘는 수레의 두 바퀴가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외국인 투자유치는 새해 우리 경제계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화두로 등장했다.

우선 당장의 외환위기라는 불길을 잡는데는 단기적인 주식 채권투자형의
간접투자(일명 포트폴리오 투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이 땅에 기업의 뿌리를 내리는 직접투자의
유치야말로 우리경제를 회생시키는 지름길이 아닐수 없다.

우선 포트폴리오 투자는 단기적 투기이익을 노리고 들어와서 여건이
나빠질 때는 언제든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우리는 지난 연말 직접
목격할수 있었다.

반면 직접투자는 우리기업과 마찬가지로 이땅의 기업토양에 붙박아 살게
되므로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고 오래 지속된다.

94년의 멕시코 외환위기 당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체결을 전후하여
멕시코에 투자한 미국 등 많은 외국기업이 4백억달러의 대미 수출실적을
올리는 등 경제회생의 버팀목 역할을 한 것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경위야 어떻든 IMF체제는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개혁과 함께 외국인 투자
여건을 크게 개선시켜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선 원화의 평가절하로 토지가격이나 임금, 내수조달 원자재 등 과거
수년간 오르기만 하던 생산요소 비용이 크게 낮아졌다.

또한 노동층의 안정된 근로의식회복, 노동시장의 유연성, 인수-합병 등
용이한 기업의 퇴출구조, 기업회계의 투명성 등 기업의 경영여건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의 외국인 투자유치실적은 11월말까지 59억달러에 달해 96년의
32억달러에 비해 두배가까이 증가했다.

그러나 IMF 프로그램을 원만히 이행하고 우리의 경제체질을 굳건히 다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연간 2백억달러 정도의 외국인 투자를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첨단기술 업종의 제조업투자에만 국한했던 세제혜택
등의 인센티브를 이제는 외자유입과 실업대책 등 경제회생 차원에서 전체
제조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외 생산기지를 찾고 있는 외국의 첨단 벤처기업 유치를 늘리기
위한 인센티브도 한층 강화했으면 한다.

나아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제조업의 투자에 대하여는 지역에 따라
실업대책기금에서 보조금을 지급하고있는 영국과 같이 우리도 실업기금의
"생산적 지출"방안을 검토해볼 시기가 왔다고 본다.

또한 세제혜택 위주의 단조로운 지원방식도 다양화하여 직업훈련비 보조,
감가상각 비율확대 등 지원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투자유치촉진기금"의 조성이 요구되고 있다.

그리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외국인 투자기업 전용공단을
설치하여 보다 저렴한 입지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단계를 벗어나 이제는
실행에 옮겼으면 한다.

여기에는 천안 외국인 전용공단이 지난 96년6월 분양을 시작한 이래
당초의 우려를 씻고 현재 임대면적이 매진되는 등 이용실적이 양호한점을
감안할수 있을 것이다.

한편 IMF시대에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인수-합병(M&A)방식의 투자에
대해서도 우리 업계에서 지금까지의 인식에서 벗어나 개방적 수용자세를
견지할 것을 권하고 싶다.

80년대 미국 기업이 구조조정으로 숨통을 트게 한 데는 일본기업의 M&A가
큰 역할을 했으며, 브라질은 간선철도망 운영권까지 미국에 매각하는 등
90년대 초반 40여개의 공기업 민영화에 외국기업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여
외채부담을 성공적으로 경감시키기도 하였다.

우리는 일찍이 60년대말 마산항의 개펄을 자유무역지대로 일궈 외국기업을
끌어들이며 산업화를 앞당기려 했던 개발초기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비록 어제의 기업과 현재의 기업투자조건은 서로 다르지만 이 땅을 찾아온
외국기업을 우리 기업으로 맞아들여 그들의 이자없는 자본과 로열티없는
기술,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일자리를 얻으려는 자세는
다를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 자존심이 강한 영국에서도 외국 제조업체들이 GDP의 19%, 수출의
40%, 고용의 13%를 차지할 만큼 외국기업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IMF 고개를 넘는 수레의 두 바퀴, 수출과 외국인 투자를 늘리는데 우리
모두 발벗고 나서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