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노동계의 반발로 진통을 겪어온 노사정위원회가 15일 발족됨으로써
자칫 극한대립이 우려되던 긴장국면이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정리해고제가 입법화된다면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공언하던 노동계가
노-사-정 협의체구성에 전격 동의한 것은 주목할 만한 태도변화다.

노동계의 이같은 입장전환이 정리해고제 도입의 불가피성을 납득한
결과이든, 아니면 단순한 장내투쟁으로의 전략수정이든 일단 고통분담에
관한 3자간 대타협의 발판이 마련됐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노사정위원회는 발족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의미를
부여한 것처럼 단순히 노사문제 뿐만 아니라 새정권의 개혁정책에 대한
사실상의 범국민적 협의기구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 행보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리해고제는 물론 기업과 정부의 구조조정, 실업대책 등 위기상황의
극복을 위한 고통분담과 관련된 사항은 어떤 것이든 이 기구의 논의를
거치지 않을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의체의 출범은 첫 단추를 끼운 것에 불과하다.

당장 발등의 불인 정리해고제에 대한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낼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 당선자측은 당초 이번 임시국회에서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정리해고제
입법을 강행할 방침이었지만 노동계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 결정한뒤 처리하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따라서 정리해고제 입법을 위한 임시국회는 소집됐지만 노-사-정의
합의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야할 형편이다.

물론 모든 문제를 이해당사자간의 충분한 논의와 합의를 거쳐 해결할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상황은 그렇게 여유롭지 못하다.

이달말까지 갚아야할 단기 외채만도 2백억달러가 넘지만 외국 금융기관들은
정리해고제 등 몇가지 요구사항의 이행추이를 지켜보며 선뜻 지원에 나서지
않고 있다.

노동계와 재계가 하루 빨리 국제신인도 회복을 위한 가시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국가부도위기 상황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이같은 절박한 상황을 올바로 인식하고 발족선언문에서
밝힌 것처럼 제2의 건국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는 비상한 각오로 문제해결에
임해주기 바란다.

위원회 발족과 때맞추어 전경련이 어제 회장단 회의에서 채택한 5개항의
경영혁신 실천결의문은 제살을 도려내는 재계의 고강도 개혁의지를 다시한번
읽을수 있게 해준다.

노동계도 이제 대화와 타협의 장에 나온 이상 자신들의 주장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대국을 보는 안목으로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

우리는 지난 96년말 노동법 개정작업 당시 노사관계개혁위에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결국 노동법파동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그때의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의 명운이 대타협의
성사여부에 달려있다는 인식아래 협의체참여 주체들 모두가 고도의
타협정신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