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표 < 외무부 제2차관보 >

오늘날의 국제사회를 한마디로 "세계화시대" 또는 "지구촌시대"로
표현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외환 금융위기가 여실히 보여주듯이 한나라에서 발생한
일이 더 이상 그 나라만의 일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커다란 파장을
미치고 있다.

그만큼 국가간의 관계가 상호의존적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세계화가 진전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교통 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지만, 이 못지 않게 중요한 요인은 냉전의 종식과
세계무역기구(WTO)발족으로 요약되는 국제환경의 변화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제사회는 사회주의의 붕괴와 냉전 종식이라는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다.

이에서 파생된 가장 현저한 변화의 하나는 국제관계에서 정치, 안보적
측면(geopolitics)못지 않게 경제적 측면(geoeconomics)도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WTO의 발족과 더불어 농업 서비스 지적재산권 등이
국제무역체제로 편입되는 것을 기점으로 국제통상문제가 국민생활의
전 분야를 망라할 정도로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세계경제를 선도하는 선진국들은 이러한 국제경제 환경의 급변에 대비하여,
대외경제분야 조직을 보강하고 정부의 대외교섭기능을 강화하는데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 취임이후 국내외 경제정책 결정을 위한 최고위급
협의기구로 국가안보위원회(NSC)에 상응하는 국가경제위원회(NEC)를
운영하고 있으며,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벨기에 핀랜드 등 중위권 선진국들은
경제기능을 외무부로 통합하여, 경제외교에 모든 역량을 총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경제외교 창구 역할은 정부조직법상으로는 외무부가
수행하도록 되어 있지만, 유관부처가 소관업무를 각기 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로 인한 낭비와 비능률은 두말할 여지도 없지만, 일관성 없는 경제외교
추진으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신인도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현재 정부조직개편위원회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조직개편방안 가운데 정부의 경제.통상분야 대외교섭.창구의 일원화
문제가 상당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통산부는 경제.통상기능을 전담하는 "통상교섭처"를 총리실 직속기구로
설치하자는 입장인 반면 외무부는 이러한 기능을 외무부로 통합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제.통상분야 대외교섭 기능을 외무부로 통합하는 국제적
추세에 비추어볼 때,외무부로 통합하는 방안이 새로운 부처를 설치하는
것보다 국가경쟁력을 보다 강화할 수 있다.

더욱이, 외무부는 경제외교의 야전인 해외시장에서 경제외교 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광범위한 재외공관망을 직접 지휘.통솔할 수 있다는 커다란
장점을 갖고 있다.

경제전쟁으로 일컬어지는 오늘날의 국가간 경쟁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야전군을 보유하지 않고는 어떠한 전쟁에서도 최후의 승리를 얻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앞으로 경제.통상분야 대외교섭이 외교통상부로 통합되면, 우리는
유기적이고 보다 강화된 대외교섭력을 바탕으로 국가이익을 극대화
시켜나가는 적극적 경제외교의 수행이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

그러나, 어제 통산부는 언론 기고문을 통해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폈다.

첫째 장관급 정부조직을 신설해도 "작은 정부"구현이 가능하며, 둘째
외교통산부가 되면 재외공관의 배타성이 심화된다고도 했다.

부처가 신설되면 장.차관등 고위직,기본 행정 조직과 추가 인력이
필요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하여 막대한 예산이 추가로 소요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구체적 설명도 없이 외교통상부가 되면 재외공관의 배타성이
심화된다는 말은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이제 우리는 IMF관리시대를 조기에 마감하기 위하여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온힘을 쏟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낭비와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는 부처 이기주의적 행동을
철저히 경계하여야만 한다.

부처 이익에 집착하여 나라의 내일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