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내 섬유제품 PU(퍼포먼스 유닛)의 김과장(인사팀.35)은 지난해
말 이후 현재까지 줄곧 귀가시간이 밤 11시를 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회사에 비상이 걸려서가 아니다.

자신이 속한 부서의 체계와 업무가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조직을 구축하고 이를 무리없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선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판"이라는 게 김과장의 하소연 아닌 하소연이다.

효성그룹이 지난해 전격적으로 단행한 조직개편은 이처럼 그룹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핵심내용은 모든 사업구조를 43개 퍼포먼스 유닛으로 전면 개편하고,
사업성격이 유사한 분야를 통합해 6개 퍼포먼스 그룹으로 분류한 것.

각 퍼포먼스 유닛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회사의 기능을 가진다.

<> 퍼포먼스 유닛이란 =말 그대로 성과지향형 단위다.

간단히 말해 효성그룹 전체를 43개의 조그만 회사로 독립시킨 것으로
보면 된다.

각 유닛은 독립된 개체로 최대의 수익성을 내기위해 독자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유닛의 사장은 전권을 갖고 의사를 결정하고, 또 이를 시행함으로써
급격히 변화하는 외부환경에 유연성을 갖고 기민하게 대응하도록
한다는 게 도입 취지다.

<> 도입과정 =이같은 시스템이 완성된 것은 지난해 9월.

효성이 매킨지사의 컨설팅을 받아 1년만에 시뮬레이션을 끝냈다.

도입과정에서부터 조직 슬림화를 이뤄 그룹 전체적으로 30여명의 임원이
옷을 벗었다.

철저히 수익성을 내는 조직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것이다.

<> 유닛 장의 권한은 =유닛 대표에겐 인사권 재무권 등 회사 사장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권한이 주어진다.

일정 한도까지 투자를 집행할 수 있으며,인력도 필요하면 독자적으로
뽑을 수 있다.

물론 권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임도 진다.

연말 고과 역시 유닛 단위로 이루어져,수익이 낮으면 인센티브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유닛 해체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43개 유닛이 모두 그룹내 조그만 계열사가 돼 경쟁을 해야 하는 구조다.

섬유제품 PU의 이승모 사장은 갑자기 부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케이스.

물론 직급은 그대로 부장이지만 책임과 권한은 사장급으로 격상됐다.

섬유제품 PU의 경우 관리직 사원이 1백47명, 공장 근로자가 90명이며
연간 매출액은 3천5백억원 규모다.

각 퍼포먼스 유닛의 장은 과거의 직급상 사장에서 부장까지 다양하다.

물자PU 효성트랜스월드PU 등 4개 유닛의 경우 부장이 사장으로 임명됐다.

기존 사업부에선 책임자가 경영상 필요한 모든 권한을 행사하지 못해
책임한계가 불분명했지만 이젠 인사 영업 구매 생산 등 모든 부문에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게 됐다.

그에 따른 공정한 평가와 보상은 당연한 결과다.

<> 부작용은 없을까 =물론 이같은 조직개편이 아직 완전한 정착단계는
아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각 독립단위인 유닛이 얼마나 수익성을 낼 수 있느냐
하는 점.

J특히 경쟁관계에 있는 유닛이 타 유닛과 얼마나 협조할 수 있는 지
여부도 성패를 좌우하는 시금석이다.

기존 사업부체제에서도 협조가 안되는 부분이 존재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경쟁체제로 전환된 이후 각 유닛들이 유닛 이기주의로 흐를 위험도
배제하긴 힘들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장치가 퍼포먼스센터.

기획조정실 역할을 하는 이센터는 "각 유닛간의 업무와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유창하 기획조정실 이사)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또 사업영역이 비슷한 유닛을 한데 묶어 일종의 소그룹역할을 하도록
한 것도 이의 일환이다.

< 이의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