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는 겸손의 미덕과 여유의 멋을 간직한 숫자이며 분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숫자이다.

이러한 "9"의 상징성을 표방, 지난 83년 인하대 전산학과 2학년 9명이
"인간 9"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모임이 결성된 해 겨울방학, 마침 한 국산 교육용 프로그램 개발 업체에서
일부 대학의 전산학 전공 학생들에게 교육용 프로그램 개발을 산학협력
차원에서 추진할 계획이며, 대학별로 10명 내외의 전산과 학생들의 지원을
받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인간 9" 회원들은 방학이라 휴강중이신 교수님 댁을 방문, 추천서를
받아 신청서를 접수하고 2주일을 기다려 드디어 교육용 프로젝트에
합류해도 좋다는 통보를 받았다.

우리 팀에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한 산수능력 테스트용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업무가 주어졌다.

그때만 해도 철없이 꿈만 쫓던 대학생들이었다.

비록 돈이 없어 대폿집에서 막걸리에 두부김치를 먹으면서도 모두 먼 훗날
한국의 빌 게이츠를 꿈꾸고 있었다.

이때 9명이 하나의 공동 관심사로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더러 몇몇 친구들은 군입대전 마지막 겨울방학을 기꺼이 포기한 채 하얗게
밤을 새우기도 했다.

이제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의 회원들은 모두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30대 중반이 되었다.

천호석(GAP 미국 현지지사장) 김유성(인하대 교수) 엄기인(국방과학연구소
근무) 박평수(LG증권 과장) 이윤상(한국투자신탁 과장) 김태국(기업은행
대리) 이윤홍(미 휴스턴대 유학중)씨, 그리고 ROTC출신의 진재훈씨는
회사를 다니다가 지난해 11월 캐나다로 가족을 데리고 이민을 떠나
그곳에서 우동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가장 힘들었다는 97년이 저물어가던 지난 12월말
우리집에서 있었던 조촐한 "인간 9" 송년 가족 모임.

자연스럽게 국내경제와 IMF 이야기로 접어들었다.

모두들 요즘과 같은 국가부도위기에 동요하지 않고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본분을 지키고 근검절약하는 정신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이러한 경제위기는
현명하게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