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같은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지만 기업들의 자금난은 조금도
풀릴 것 같지 않아 여간 걱정이 아니다.

지난해 말에는 기업이나 은행 모두 우선 급한대로 어떻게든지 연말만
무사히 넘기고 보자는 심정으로 버텼지만 막상 새해가 돼도 은행들이
자신들의 생존여부를 확인할 때까지는 돈줄을 쉽게 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은행들의 후순위채권을 매입해주고,원화환율을 끌어내리는 등
총력전을 편 끝에 일단 지난 연말에는 대부분의 은행들이 BIS비율을
충족시킨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는 3월까지 시중은행들에 대한 경영실사
작업을 끝내고 그결과를 토대로 이른바 "살생부"가 작성될 예정이기 때문에
아무리 정부가 대출을 독려하고 은행장들이 수출환어음 매입을 결의해도
일선 은행창구에는 마이동풍인 실정이다.

하지만 사면초가에 빠진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당장 대출 및 회사채 만기가 집중적으로 돌아오는데다 대기업들이
3월말까지 상호지급보증한도를 자기자본금의 1백%로 줄여야 하는데
은행창구가 얼어붙어 있으니 이대로 가다가는 올 1/4분기중에 엄청난
부도회오리가 몰아칠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기업의 연쇄도산은 은행의 대출자산을 부실화시켜 BIS비율을
떨어뜨릴 뿐만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실물경제의 성장기반을 무너뜨려
IMF지원하에 추진중인 구조조정이 실패할 우려마저 있다.

따라서 정부당국은 은행대출을 독려한다, 대출실태를 점검한다 하며
실속없이 부산만 떨지 말고 은행이 돈줄을 풀게 하는 유도방안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정부는 후순위채권의 매입확대, 신용보증기금에 대한
추가출연, 특수은행에 대한 증자 등을 추진하고 한국은행은
RP(환매조건부채권) 매입을 통해 은행들이 콜자금을 원활하게 공급하도록
지원하는 한편 보유달러지원을 은행들의 신용장 네고, 수출환어음 매입및
담보대출실적 등과 연계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등에 대한 출자,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
보증기금 등에 대한 출연및 특례보증 등을 확대해 이들이 대출만기 연장과
진성어음 할인 및 대출보증에 앞장서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얼마전에 민영화된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은 지금까지 기업대출이
많지 않았고 현재 상대적으로 자금여유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본격적인
시장경쟁에서 홀로서기 위해서도 이번 기회에 기업들에 대한 자금지원에
발벗고 나서줘야 할 것이다.

끝으로 부실금융기관의 정리를 최대한 앞당기고 객관적인 정리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부실종금사에 거액의 콜자금이 묶여 있는데 콜거래가 활성화될 수 없으며
일부 은행들은 부실채권매입 등 정부지원이 특정은행에만 편중돼 있다는
피해의식때문에 대출확대에 소극적인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한은이 보유한 달러를 많이 쓰는 금융기관이 일차적인 정리대상이
된다는 소문까지 나도는 상황이어서 더욱 객관적인 기준제시가 시급하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