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벌해체라는 말과 관련해서 나오는 이야기는 대기업부도가 과도한
금융차입과 선단식경영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금융차입을 줄이고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포함하는 계열사 독립경영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본 방향에서는 그럴듯한 말이지만 이것을 정부가 정책으로
추진할 것인지, 시장에 맡길 것인지 접근방법에서는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대기업 부도사태가 분명 일부 기업의 과도한 차입, 선단식 경영과 같은
무모하고 방만한 경영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근본원인은 정부주도 경제운영
이다.

과거 정부의 기업정책은 인위적인 측면이 많았다.

자율경영과 개방경제에 기초한 시장경제원칙을 적용하여 자연스럽게
유도되어야 할 문제를 정책이라는 이름아래 인위적으로 끌고 가려고
한 측면이 많았다.

업종전문화정책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업종전문화 정책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실패했다고
볼수밖에 없다.

통제와 폐쇄의 패러다임으로 운영되는 경제체제에서는 독점과 체제가
유지되기 때문에 대기업은 무엇을 해도 성공할수 있다는 무모한 사고가
길러졌고 한보사태에서 보았듯이 정치권까지 개입하는 관치금융의 지원아래
소위 말하는 문어발식 확장이 가능했다.

자율과 개방의 패러다임으로 바꾸어 진입장벽을 허물고 개방경제로
나아가 경쟁을 심화시키면 기업의 능력에 따라 사업구조가 재편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IMF를 계기로 우리경제가 세계경제에 보다 밀접하게 접목되어
세계경쟁의 현실을 바로 보게 되었다.

우리가 시장경제 체제로 나아가 한국의 금융권이 책임경영을 함으로써
각 기업의 상호지급보증을 고려한 사업위험을 평가하고 무분별한 대출을
하지 않는다면 기업에 따라서는 상호지급보증을 축소하고, 부채비율을
낮추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전망이 좋지 않은 일부 계열사들을
매각하는 사업의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도 인위적 정책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원칙에
의해서 필요성을 느끼도록 해야 할 것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및 전문경영인의 필요성은 시장경제원칙이 적용되어
경쟁이 심화되어야 나올수 있는 것이다.

단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은행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었지만 은행이 제대로 경영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떤 원로 은행가는 우리나라에 제대로된 은행가가 극히 드물다고 했다.

그것은 정부에 의해서 은행이 통제되는 나머지 은행원이 위험을 택하고
결정을 내릴 필요가 별로 없어 능력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아의 예에서도 보았듯이 전문경영인 체제가 특별히 낫다고
할수 없는 것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나 전문경영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임경영이
중요하다.

책임경영은 자율과 경쟁의 시장경제원칙이 적용될 때 나오는 것이다.

책임은 성과를 요구하고 평가하는 것인데 은행의 예에서 보았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자율도 없었지만 성과를 평가하는 감독기능도 없었기
때문에 금융기관이 무책임한 경영을 하고 부실화된 것이다.

또한 독립경영은 계열기업만의 독립경영이 아니라 계열기업내의
각 사업부가 독립경영을 해야 하고 사업부내의 소사업부가 독립경영을
해야하는 등 그것은 기업체질의 문제이다.

체질의 문제라고 하는 것은 넓게는 기업문화를 말하는 것으로 경쟁이
심화되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필요를 느낄 때 형성될수 있는
것이지 정책이라는 외과적 수술로 될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룹비서실이 있으면 독립경영이 되지 않고 없으면 독립경영이 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황제식 경영방식"을 택하고 있어 독립경영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만 GE의 잭 웰치 회장은 황제이상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어도
책임경영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재벌해체라는 말보다 시장경제원칙을
철저하게 지켜 은행이 재경원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자기 목소리를 내고
책임을 지고 대출결정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장경제원칙을 적용하면 대기업도 망할수 있기 때문에 방만한 투자를
자제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자격있는 은행이 설립될수 있도록 하고 BIS 기준을 적용하여
사후감독을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금융공황이라는 위기상황이기 때문에 정부가 어떤 기준을
설정하여 회생가능한 은행과 그렇지 않은 은행을 구별하고 건전한 외국은행의
진출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금융시스템을 정상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기업이란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유기적 시스템이다.

우리가 기업이 변하기를 원한다면 환경을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 환경이 바로 자율과 개방에 기초한 시장경제원칙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