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아침 이 시점에서 대통령당선자라는 지극히 당연한 호칭이
뭔가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을 갖는다.

공식적으론 아직 중앙선관위가 당선자를 확정 발표하기도 전이고, 헌법에
규정된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려면 앞으로 두달이상 더 기다려야 하지만
이미 그는 국정 전반에 대한 실체적 최고책임자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그는 종전의 대통령선거 승리자와는 다르고, 통상적인
대통령당선자가 해야할 일 그 이상을 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다.

바로 그것이 오늘의 국가현실에 바탕한 국민들의 요구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잔여임기를 두달여 남겨 놓고 있는 현 대통령도 이같은 현실과 국민적
바람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대통령당선자는 바로 오늘조차 어느 한 순간도 승리의 기쁨에 도취하거나
선거전의 피로를 풀기 위한 시간으로 낭비해선 안된다.

유권자와 당선자, 우리국민 모두에게 그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통스러워 하거나 지친 표정을 지어서도 안된다.

정말 고통스럽고 지친 사람들이 너무 많은 현실이기 때문에 당선자는 더욱
강인해야 한다.

당선자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는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떨어질대로 떨어진 국가신용도를 되살리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의 국제통화기금(IMF)체제가 본질적으로 국내 경제운용을
잘못한데서 기인하지만 외교의 실패도 큰 원인이 됐다고 본다.

IMF 구제금융과 관련된 미국과 일본의 일련의 움직임을 뜯어보면 그런 감을
떨쳐 버리기 어렵다.

표면상 적극적으로 한국을 지원한다는 외교적 수사로 일관했지만, 그
행간을 되새겨 보면 그렇다.

실제로 미.일 정부의 지원은 아직까지 이렇다 하게 이루어진게 없다.

당선자는 빠른 시일안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거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이른바 재협상론 때문에 미국과 IMF의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고 볼때 더욱 그러하다.

우리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고,불필요한 오해가 있었다면 이를 바로잡아야
할 것은 물론이며 "약속"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해야 한다.

IMF와 미.일 정부가 약속한 돈을 하루빨리 들여와 금융시장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도 그렇고, 4자회담, 미.북한간 접촉 등 현안문제들을 바람직한 방향
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도 그렇다.

당선자가 산적한 대내외적 과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빠른 시일내에
실질적으로 행정을 장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게 되려면 현정부는 물론 대통령선거전에서 경쟁관계였던 각당 후보 등
정치권 전체의 협조가 있어야 겠지만 당선자가 포용력있는 폭넓은 리더상을
보여 주는 것도 긴요하다.

정부조직 경제구조등 대통령당선자가 개혁해야할 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개혁과제들은 대통령임기가 시작된후 늦어도 6개월 이내에
단행되지 않으면 불발로 끝날 위험이 높다.

바로 그런 점에서 당선자는 취임전에 개혁목표와 방향은 물론이고 구체적인
실천계획까지 확정지어야 한다.

우리는 김영삼정부가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통치철학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뜬 구름같은 인기에만 영합, 우왕좌왕하다가 국민 모두로부터 신뢰를
잃었다고 진단한다.

지금은 동네북이 된 금융실명제도 기본적으로 그런 발상의 소산이고,
12.12및 5.18 관련자 처리나 북한식량 지원문제 등을 놓고 정부방침이
왔다갔다 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연유라고 풀이할수 있다.

우리는 이번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도 우선 눈앞의 표만 생각하는 인기
영합적인 "말의 성찬"이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장경제원칙을 존중하고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겠다면서 실업은 늘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식의 주장들도 따지고 보면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새 정부는 다음 선거가 아니라 다음세대를 생각하는 철학을 갖고 정책방향
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오는 22일부터 열릴 임시국회에서 다뤄야할 금융개혁법안 등도 바로 그런
의식이 요구되는 사안들이다.

바뀐 경제상황에 맞춰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해나갈수 있도록 뒷받침하려면
정리해고제도입 등도 더이상 미룰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당선자는 빛도 나지 않고 어쩌면 욕만 먹게 될지도 모르는 이런
사안들의 해결을 위해 전면에 나서야 한다.

스스로 높은 도덕적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지키면서 구조조정의 결과에
따라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당할 사람들을 설득하는 괴로운 작업을 마다
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기능과 조직개편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이쪽 부처 사람을 저쪽으로 보내는 식의, 종전에도 흔했던 방식
으로는 국가경쟁력제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나와야 한다.

없앨 부처는 과감히 없애고 행정규제도 대폭 없애면서 그 업무 종사자 만큼
공무원 숫자자체를 줄여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취임초기에 하지 않으면 끝내 못할 것이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에 대통령 당선자가 빠른 시일안에 단안을 내려야할 필요가 있다.

"인사가 만사"인 것은 대통령 당선자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현 정부의 숱한 문제가 심심하면 장관이 바뀌고, 그로 인해 일부부처의
경우 국.과장급 실무자까지 이삿짐을 풀기가 무섭게 또 자리를 옮기는
공직자들의 퍼레이드 때문이었다는 점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우선 고를 때 잘 골라야 겠지만, 일단 맡겼으면 믿고 일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공조직이 친.인척이나 가신 등에 휘둘리지 않도록 국무위원을 국무위원으로
대접해야할 것은 물론이다.

대통령당선자가 빠른 시일안에 합당한 사람들로 정권인수단을 구성, 숱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시적인 행동을 보여 주길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