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귀는 눈보다 더 간사한 것 같습니다. 차의 엔진소리가 소음이 아닌
박동으로 박동을 넘어 차가 튕겨 나갈 것 같은 긴장을 느끼는 순간부터 차
곁을 떠날수가 없었습니다"

교보증권 영업팀의 강철성대리(33)는 지난 94년 아내, 아들과 함께
용인에버랜드에 놀러갔다 우연히 카레이싱 광경을 본후 자동차에 푹 빠져
버렸다.

그후 친구들을 경기장이 있는 에버랜드로 불러낸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자기표현도 잘 못한다는 강대리는 차 얘기만 나오면
눈에 불을 켜고 목소리를 높인다.

개인적인 얘기를 들어보려고 아무리 화제를 돌려도 결국은 자동차 얘기로
돌아간다.

마치 차가 인생의 전부인양.

그는 틈만 나면 용인으로 달려간다.

그곳엔 우리나라의 유일한 자동차경기장이 있다.

따라서 차에 대해 얘기를 나눌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온다.

굳이 말이 필요치 않다.

차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만으로 서로 마음이 통한다.

어떤때는 한밤중에 팀원중 한명이 발의를 하면 그들의 약속장소인 장안동에
모인다.

그리고 그길로 내달려 전국을 누비다 새벽에 올라와 출근한다.

그러나 피곤한 줄 모른다.

그까짓 잠이야 밥굶고 점심시간에 잠시 자면 된다.

밥보다 레이싱이 더 중요하다.

처음 이 취미생활을 시작할때는 아내와 갈등도 많았다.

결혼한지 2년 밖에 안된 남편이 잠들때는 옆에 있었는데 새벽에는 옆에
없다.

아내를 재워놓고 몰래 차를 몰고 나간 강대리는 그길로 팀원들과 함께
전국을 누비다 새벽에 몰래 들어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시합이 있을때는 한달에 2백만원 가량의 경비가 들어간다.

월급쟁이들이 쉽게 할수 있는 일이 아닌데 강대리는 이미 3년째 이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다.

현재 그는 4천5백만원짜리 전세를 살고 있다.

지난 3년간 전세값 이상을 들여가며 취미생활을 해온 탓이다.

이같은 상황을 강대리는 몸으로 때워왔다.

설겆이에서 빨래와 온갖 집안일을 맡아하며 아내의 환심을 샀다.

지금은 이 취미같지 않은 취미를 이해해 주는 아내가 고마울 따름이다.

강대리는 등록된 정식 선수는 아니지만 경주용차는 안타본 것이 없다.

스포츠주행은 하지 않지만 자기차를 갖고 하는 체험주행이나 떼지어 질서
있게 함께 달리는 그룹주행을 한다.

시합때나 시합이 닥치면 그는 팀원들과 함께 차바퀴를 갈아주고 휘발유통을
들고 다니면서 기름을 넣어주거나 차를 닦아준다.

그러나 이 일을 즐거울 따름이다.

차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들은 도저히 할수 없는 일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 주위에 흔하다.

어떤 이들은 레이싱복 한번 입어보기 위해 레이싱팀에 참가하기도 하고
경주용차앞에서 사진한번 찍어보는 것이 소원인 사람들도 많다.

이들중에는 차에 빠져 삶 전체가 바뀐 사람들이 많다.

그들만의 용어로 그 시작단계를 빨간불이 켜졌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강대리는 아직 그 상태까지 다다르지는 않았다.

요즘도 밤이건 새벽이건 팀원들에게서 연락이 오면 어디든 달려 나간다.

이 취미생활이 그의 영업능력 향상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최악의 증시에도 그가 맡고 있는 종목중에는 관리종목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회의가 들었던 적도 여러번 있었다.

시합이 있을때는 한달에 2백만원이 들어가는 바닦에 생활은 수밖에 없었다.

취미와 생활 이의 벽을 뛰어넘기 힘들었다.

또 선수는 좋은데 차에 들인 돈이 적어 입상에 실패했을때 팀장으로서
정말 이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현식적인 난관이 있긴하나 그는 이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그는 4살 짜리 아들을 카레이서로 키우기로 이미 아웃을 정할만큼 그는
자동차에 미쳐 있다.

강대리는 이 스포츠가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되길 바란다.

또 경기장도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모든 스트레스를 가진 사람들과 폭주족들이 마음놓고 달릴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아마도 폭주족이 없었으면 카레이싱은 없었을 겁니다. 이곳은 보험도 되지
않고 사고가 나도 "괜찮습니까" 라는 말한마디로 모든 것이 끝나는 자유공간
입니다"라고 강대리는 주장한다.

그는 원래 난폭운전자였다.

그러나 카레이싱을 시작한후 더욱 안전하고 우아하게 운전하는 법을 배웠다.

밀폐된 공간에서 자신만을 생각하는 운전이 아닌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름을 따라 가는 운전이 그것이다.

그리고 "진짜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차가 아닌 남들의 차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말을 덧붙이고 한 보따리 자동차책을 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선다.

< 김용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