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태 < 삼보컴퓨터 회장 >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가장큰 특징은 빠른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의 영도자가 해야 될 최대 책무는 변화의 큰 물줄기를 내다
보고 국가와 국민을 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일이다.

변화를 촉발한 근본 원인은 기술에 있다.

반도체 칩1개의 능력은 과거 30년간 1백만배로 증가했고 한 글자를 저장
하는데 드는 비용은 1백만분의1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50년간 그대로 계속될 전망이다.

이것은 기억소자뿐 아니라 컴퓨터 전체의 가격과 성능에도 적용이 되며
또 광섬유와 통신기기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이제 국가 영도자는 이러한 변화가 가져올 엄청난 사회변혁을 예견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미리 강구하지 않으면 나라를 이끌어갈 수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우리경제의 어려움을 고비용-저효율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대책은 주로 고비용 구조를 줄이는데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고비용을 줄이는 쪽보다는 저효율구조를 고치는데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고비용 대책을 대증요법이라고 한다면, 저효율 대책은 근원 치료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업화사회에서는 농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공업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공업을 발달시켜 농기계와 비료를 대주지 않고는 농업의 생산성을 기대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화의 뒷받침없이 공업의 생산성증가에는
한계가 있다.

"임금을 억제한다" "금리를 낮춘다" "공장 부지를 늘린다"하는 등 산업
사회의 발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보 기술이 발달하여 공장을 자동화하고, 거래를 전자화하고, 결재서류를
없애는 등 정보기술의 도입없이는 공업 생산성증가에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결론은 명백하다.

우리가 살 길은 정보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정보화를 촉진하는
일이다.

따라서 차기 대통령은 정보화라는 역사의 물줄기를 읽고 그 기반위에서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당면문제도 이러한 시각 위에서 해결해야 한다.

오늘의 문제를 어제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정보기술의 변화는 30년에 1백만배가 된다.

이것은 일찍이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가공할 변화이다.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나는 변화나 개혁이 아니고 연속적인 패러다임
이동에 의해서만 대응할 수 있는 그러한 변화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차기 대통령에게는 우리의 반만년 역사중에서 가장 좋은
기회를 준비해 놓고 있다.

그 첫째는 초고속 정보통신망이다.

한국전력은 지금 4천만kW의 전력생산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 4분의3이
83년 이후에 건설된 것이다.

이때 광섬유가 실용화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에 고압 송전선로의 접지선
(Ground Wire)에 광섬유를 넣어서 건설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이 송전선을 따라 전국에 초고속 기간통신망이 부설
되어 있다.

이것은 접지선을 부설하는데 들어있기 때문에 시설비가 제로이므로
전세계에서 가장 값싸게 깔린 초고속 통신망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일본 영국보다 뒤에 건설된 후발 주자의 이점이라 할 수 있다.

케이블 TV 선로는 2년전부터 한국전력 등이 건설했는데 한전은 건설할 때
처음부터 쌍방향 통신이 가능한 제2세대 시스템을 채택했다.

따라서 이 선로를 이용하여 TV를 공급받는 가정에서는 모뎀만 설치하면
전화 선로 통신량의 2백~1천배 속도로 인터넷 통신을 할 수 있다.

만약 한전이 2000년까지 케이블TV 선로를 전국에 깔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1천만 가구가 초고속 쌍방향 인터넷망을 갖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차기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이 기가 막힌 시설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정책들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둘도 없는 양질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 국민이 가지고 있는 교육열, 특히 대학입시에 쏟아넣는
에너지이다.

이 에너지를 우리는 대학입시만을 위한 열 에너지로 날릴 것이 아니라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운동 에너지로 집속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대학 입시에 컴퓨터 과목을 넣을 것을 제안한다.

만약 그렇게만 하면 5년뒤에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쓰는 국민이 가장 많은 국가가 된다.

이것은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셋째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일본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시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 수출은 제로인 한심한 나라이다.

그러나 큰 시장이 있다는 점, 그리고 고학력 취업희망자가 많다는 점 등을
활용하여 육성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소프트웨어 개발 단지를 만들어 그 붐을 일으키기
위한 개발과 집합체(Critical Mass)를 형성하는 일이다.

지금 인천 송도에 이런 목적으로 미디어 밸리가 조성되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강력한 정책 의지를 가지고 이 미디어 밸리를 적극 지원하여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생산기지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으나 정보화라는 새로운 무대가
열리면서 거기에 화려하게 등단할 확실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차기 대통령은 우리를 선진국대열에 올려놓을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만 보지 말고 더 크고 높은 시야를 가지고 정보화
선진국을 이끌어줄 대통령을 우리는 간절히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