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록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IMF팀의 피니싱 블로에 주저앉고 말아야 하는 우리의 입장을 곰곰이
되새기며,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우리의 곤경을 새삼스럽게 절감했다.

어쨌든 이제 한국의 협상팀은 링사이드로 물러나 6백억달러란 구제금융의
로프를 거머쥐었다.

대체 우리는 6백억달러란 수준자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며,
이 6백억달러로 무엇을 해야 하나.

우선 다급한 불은 끌수 있게 되었다는 한숨섞인 안도가 우리 국민의
첫 반응인 듯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6백억달러란 수준은 "전문가들이 고도의
경제산출로 치밀하게 계산한 최소수준"인 듯하다.

차분하게 한번 따져서 이 결론을 풀어 보자.

우리는 6백억달러로 (1)우선 해외에 진 빚(지급 기일이 도래하는 외채)을
갚아야 하며 (2)부족한 외환 보유고를 메워 주기 위한 대기성자금
(stand-by)으로서 상당부분을 유보해야 할 것이고 (3)그러고도 만일 여유가
있다면 일상적인 대외지불(경상지급)의 주머니 역할도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총 외채규모는 이 시점에서 적어도 1천2백억달러에 이르며,
금년말에는 1천3백억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추산이다.

"추산" 1천2백억달러중 얼마가 단기채무인가 하는 것도, 역시 정보의
투명성 부족 때문에 확언하기 어렵지만, 일본 아시아연구센터의 추정치를
기초로 하여 공표된 각종 자료를 종합해 보면 약 7백억달러에 이르는 듯하다.

놀랍게도 우리 총외채의 약 60%가 단기채무인 셈이다.

이 단기채무의 거의 대부분이 만기 1년 미만이라고 한다.

최근에 무너진 재벌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단기차입금에 대한 높은
의존도, 즉 채무구조의 악성이었다.

우리의 국가적인 외채구조가 부도를 낸 재벌들의 채무구조와 너무나
흡사하다.

어쨌든 우리는 6백억달러라는 "얇은 주머니"에서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외채를 갚아야 한다.

빚으로 빚을 갚는 에버그린(evergreen)이다.

둘째로 6백억달러의 일부를 "대기성"으로 묶어둘수 밖에 없게 하는
우리의 외환보유고 수준은 현시점에서 대체 얼마인가.

외환보유고 수준에 대해서도 1백50억달러와 2백40억달러 사이에서 설이
난무했으며, 심지어는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쳤다는 설도 있었는가 하면,
3백억달러라고 태연하게 밝힌 고급관료도 있었다.

IMF팀이 정밀조사한 최종적인 외환보유고는 대체로 70억달러 수준이었다.

IMF가 권고하는 적정 외환보유고 수준은 3백60억~3백70억달러 선이다.

이는 우리의 매월 일어나는 경상적인 대외지급액(월 수입액+
월 무역외지급액)의 3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적정외환보유고 수준과 IMF가 정사한 외환보유고 현잔을 대치시켜
놓으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6백억달러중 "적정 외환보유고"를 유지하기
위해 대기시켜 놓아야 할 몫이 상당하리라는 것은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IMF구제금융 6백억달러 수준을 "치밀하게 계산한 최소수준"이라고
평가한 것은 대체로 위와 같은 추론에 근거하고 있다.

이 추론을 확장하면 첫째 내년에 일어나는 경상적인 대외지급은 경상적인
대외거래의 수입으로 충당해야 하며, 둘째 단기채무의 일부를 경상수입으로
갚아내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 추론은 당위성뿐 아니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환율상승에 따른 수출증대및 수입감소, 국내 투자위축에 따른 수입감소,
수출드라이브, 경기하강으로 인한 소비위축, 국민의 절제와 수입물가의
상승에 따른 "수입소비"의 감소 등을 감안할때, 내년에 무역수지개선의
일부가 단기채무의 변제에 기여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다보아도 좋을 것
같다.

6백억달러란 수준은 최소수준이기는 하지만, IMF가 개입했다는 것 자체가
국제투자가에 대한 IR(investors relation)를 개선시켜 주는데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유동성"시장에 관한 한 내년에도 "긴장"과 "불안"은 상존할
것이다.

종합해 볼때 (1)IMF구제금융과 한국 경제를 "규율"할 IMF프로그램이
가져다 줄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도 상승 (2)긴장과 불안속의 한국경제가
여전히 갖게될 "국제 유동성"에 대한 갈증 (3)한국의 금리인상과
국제금리와의 격차 확대 (4)바닥을 치고난 다음에는 기어오르는 주식시장의
패턴 등이, 해외의 돈을 한국에 불러들이는 조건을 훨씬 호전시켜 줄것 같다.

주로 주식시장과 단기채권시장의 루트를 통해 해외의 돈이 유입될 것이다.

IMF구제금융이 국제투자가에게 레일을 깔아주었다는 평가도 위의 맥락에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또한 IMF구제금융 6백억달러의 수준 자체를 평가할 때 특히 이 점에
유의해야 하지 않을까.

"돈"에 관한 한, 내년의 한국경제는 교란요인을 안은 채 살얼음판을 밟게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