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모임] 조병세 <총리실 정무비서관 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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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st Walking"하면 우리에게는 좀 생소한 용어지만 우리나라같이 아름
다운 산이 별로 없는 호주인들에게는 "Bush Walking"과 함께 아주 친숙한
여가활동중의 하나로 꼽히는 레포츠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친구 가족들과 함께 주말이면 등산을 하듯 특별한
장비나 준비없이 동호인들끼리 모여 먹을 것을 준비해서 해변가를 걷는 것을
코스트워킹이라 부른다.
필자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호주 시드니에 있는 뉴 사우스
웨일스대학에서 초청교수(Visiting Professor)로 있는 동안 초청교수로 같은
대학에 있던 한국분들과 격의없이 어울려 주말이면 코스트워킹을 즐겼다.
특별한 취미활동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멀리 이국땅에서 비슷한
또래의 동료들과 함께 오염되지 않은 아름답고 한적한 호주의 해변을 걷는
맛이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특히 간단하게 싸온 음식과 과일을 먹어가며 풋풋한 남태평양의 바닷내음을
맡으면 가슴속까지도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곤했다.
당시 함께 어울렸던 분들은 최진 전 동아일보이사, 박무현 계명대교수,
송형준 전 외환은행 시드니현지법인 사장, 이상억 서울대국문과 교수 등이다.
우리들의 주말 코스트워킹 모임 총무를 맡았던 최진 이사는 조용하고
담백한 성격으로 현재는 호주 현지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박무현 교수는 시드니에서 필자와 같은 동의 아파트에 살면서 가장 절친
하게 지냈던 분으로 홀아비처럼 지내던 당시 아침마다 빵도 구워주고 챙겨
주던 형제같은 사이였다.
송사장은 필자의 고등학교 선배님으로서 필자를 친동생처럼 아껴주셨고
인생경험도 많이 들려주는 따뜻한 분이며, 이상억 교수님은 시드니대학에서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 본인에게 주제를 발표할 기회도 주었던 분이다.
호주에서 귀학한 후에는 여건상 종전처럼 해변가 걷기는 못하지만 가끔씩
서로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그때의 아름다운 추억을 이야기하곤 한다.
최진 이사가 시드니에 머물고 있는 관계로 함께 만나지 못해 모두들 섭섭
해하지만 서신이나 전화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은 물론이다.
모두들 서로 다른 분야에 있던 사람들이고 지금도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때의 인연으로 우리들은 남이 아닌 "우리"라는 끈으로 서로를 묶고
늘 격려하며 지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일자).
다운 산이 별로 없는 호주인들에게는 "Bush Walking"과 함께 아주 친숙한
여가활동중의 하나로 꼽히는 레포츠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친구 가족들과 함께 주말이면 등산을 하듯 특별한
장비나 준비없이 동호인들끼리 모여 먹을 것을 준비해서 해변가를 걷는 것을
코스트워킹이라 부른다.
필자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호주 시드니에 있는 뉴 사우스
웨일스대학에서 초청교수(Visiting Professor)로 있는 동안 초청교수로 같은
대학에 있던 한국분들과 격의없이 어울려 주말이면 코스트워킹을 즐겼다.
특별한 취미활동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멀리 이국땅에서 비슷한
또래의 동료들과 함께 오염되지 않은 아름답고 한적한 호주의 해변을 걷는
맛이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특히 간단하게 싸온 음식과 과일을 먹어가며 풋풋한 남태평양의 바닷내음을
맡으면 가슴속까지도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곤했다.
당시 함께 어울렸던 분들은 최진 전 동아일보이사, 박무현 계명대교수,
송형준 전 외환은행 시드니현지법인 사장, 이상억 서울대국문과 교수 등이다.
우리들의 주말 코스트워킹 모임 총무를 맡았던 최진 이사는 조용하고
담백한 성격으로 현재는 호주 현지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박무현 교수는 시드니에서 필자와 같은 동의 아파트에 살면서 가장 절친
하게 지냈던 분으로 홀아비처럼 지내던 당시 아침마다 빵도 구워주고 챙겨
주던 형제같은 사이였다.
송사장은 필자의 고등학교 선배님으로서 필자를 친동생처럼 아껴주셨고
인생경험도 많이 들려주는 따뜻한 분이며, 이상억 교수님은 시드니대학에서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 본인에게 주제를 발표할 기회도 주었던 분이다.
호주에서 귀학한 후에는 여건상 종전처럼 해변가 걷기는 못하지만 가끔씩
서로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그때의 아름다운 추억을 이야기하곤 한다.
최진 이사가 시드니에 머물고 있는 관계로 함께 만나지 못해 모두들 섭섭
해하지만 서신이나 전화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은 물론이다.
모두들 서로 다른 분야에 있던 사람들이고 지금도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때의 인연으로 우리들은 남이 아닌 "우리"라는 끈으로 서로를 묶고
늘 격려하며 지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