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욱 < 숭실대 명예교수 >

경제난국의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국가위기의 적신호가 켜졌다.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처지에까지 이르렀다.

우리는 이 난국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

링컨의 명언과 같이 "인간은 역사에서 도피할 수가 없다".

우리는 지혜와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이 어려운 역사적 현실을 돌파해야
한다.

모두 눈을 크게 뜨고 허리띠를 힘껏 졸라매자.

그리고 열심히 뛰자.

왜 이러한 난국과 위기가 닥쳐왔는가.

최근에 한국인은 외화내허의 중병에 걸렸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비어 있다.

외형은 크고 요란하지만 내용은 빈약하고 한심하다.

국민소득 1인당 1만달러에 도취하여 2만달러, 3만달러의 소비생활을
해왔다.

일부의 부유층은 비싼 외산차를 사는데 혈안이 되었다.

고가의 외제 화장품과 사치품을 사느라고 동분서주한다.

국정의 중책을 맡은 사람들이 위기관리 능력을 상실하고 저마다 책임
전가에 바쁘고, 공무원은 무사안일속에 날을 보내고, 기업은 국제 경쟁력을
상실하고, 외채는 천억달러를 넘으면서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방만과 낭비, 부정과 부패, 사치와 탐욕의 망국병에 걸려
국력은 날로 쇠잔하고 국가의 공신력은 갑자기 떨어졌다.

이러한 망국적 생활의 누적이 경제난국과 국가위기를 초래했다.

방만과 부패와 사치, 이 세가지가 한국인의 외화내허병이다.

우리는 이 병부터 없애야 한다.

이것이 경제재생 국가부흥의 지름길이다.

일찍이 19세기의 위대한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는 이렇게 말했다.

"민족의 흥망을 결정하는 것은 경제력도 아니요, 군사력도 아니다.

국토의 크기도 아니다.

그것은 도덕적 에너지다"

우리는 이 명언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젊은 케네디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역사의 제물이 되지말고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결단을 내리자"

어떤 국민이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느냐.

나의 대답은 이렇다.

"첫째는 왕성한 활동력이요, 둘째는 굳건한 단결력이요, 셋째는 진실한
국민성이다"

이 난국을 극복하려면 무실역행의 정신이 필요하다.

아무리 나라의 위기와 난국이 닥쳐와도 국민의 도덕적 에너지가 풍부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도덕적 에너지가 빈약하면 전후의 아르헨티나와 필리핀처럼
역사의 패배자로 전락한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난 후에 제일 먼저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 나라는
아르헨티나와 필리핀이라고 온 세계가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 두나라는 독재청치와 국민의 도덕적 에너지의 고갈때문에 3류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도자를 잘못 뽑으면 나라가 망한다.

국민의 도덕적 자질이 허약하면 국가는 쇠퇴한다.

우리의 전도를 가로막는 난국을 극복하기 위하여 나는 네가지의 덕목을
강조한다.

첫째는 왕성한 주인정신을 가져야 한다.

일찍이 도산은 외쳤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그 국민의 주인정신이 강하냐, 약하냐에 의해서
좌우된다"

주인정신이란 무엇이냐.

주인정신은 두가지의 내용을 내포한다.

첫째는 독립정신이요, 둘째는 책임정신이다.

책임을 느끼고 책임을 질줄 아는 것이 주인정신이다.

민주주의는 국민 각자에게 고도의 책임의식을 요구한다.

우리는 역사의 방청석에 앉아서 조용히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하는 무책임한
구경꾼이 아니다.

우리는 역사의 당당한 주인이다.

백범선생의 말과 같이 "국가존망 필부유책", 나라의 존망에 대해서는 모든
국민이 응분의 책임이 있다.

우리는 책임감이 강한 국민이 돼야 한다.

둘째는 투철한 근검 저축의 정신이다.

우리는 지하자원이 빈약한 나라다.

그 대신 우리에게는 교육받은 풍성한 인적자원이 있다.

우리는 이 자원을 최고도로 활용해야 한다.

열심히 일하자.

저마다 검소한 생활을 하자.

그리고 부지런히 저축하자.

앞으로 IMF의 지원을 받으면 우리의 외채는 더욱 늘어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근검 저축의 정신으로 몇햇동안 허리띠를 힘껏 졸라매고 부지런히 저축하면
서 검박한 생활을 해야 한다.

"철학자처럼 사색하고 농부처럼 일하여라.

이것이 바람직한 이상적 인간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의 이 말을 우리는 가슴에 새기고 근근자자 열심히
일해야 한다.

셋째는 수분지족의 정신이다.

사람은 저마다 분수가 있다.

우리는 자기의 분수를 알고 분수를 지키고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네 분수를 지켜라"

이것은 인간생활의 첫째가는 대원칙이다.

인간은 욕망을 가져야 한다.

욕망은 발전의 원동력이다.

욕망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

그러나 그 욕망이 자기의 분수에 맞아야 한다.

분수에 맞지 않는 지나친 욕망은 허욕이요, 과욕이요, 탐욕이다.

허욕과 과욕과 탐욕은 인간을 파멸시킨다.

허욕의 노예가 되지 말라.

탐욕의 포로가 되지 말라.

과욕의 종이 되지 말라.

우리는 자기의 생활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지족이다.

우리는 자족인이 되어야 한다.

끝으로 신용의 정신이다.

개인이건 국가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신용이다.

신용은 인간의 도덕적 자본의 에센스다.

우리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믿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신용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정직에서 생긴다.

정직하려면 언과 행이 일치해야 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거짓말쟁이가 되고, 거짓말쟁이라고 사회적
낙인이 찍혀지면 그는 사회에서 완전히 버림을 받는다.

"무신불립(신용이 없으면 설 수 없다)".

공자의 이 말은 천추만대에 변함이 없는 위대한 진리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신용의 확립이다.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공신력을 상실하면 차관을 할 수 없고 상품이 팔리지
않는다.

신용의 유무가 인간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

주인정신, 근검저축의 생활, 수분지족과 신용, 우리는 이 네가지의 덕목
으로 우리앞의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