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만기 CP할인율이 연22.5%를 기록하는 등 실세금리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운데 부도는 갈수록 늘어 최근들어서는 상장회사만도 하루
1개사꼴로 무너지는 상황이다.

정말 위기감이 온 몸에 와닿고 있다.

30대그룹 기조실장들이 통산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차입금 상환연장을
보장할 대통령 긴급명령을 요구한 것만으로도 상황이 상황임을 알수 있다.

강제통폐합 대상이 될까봐 조바심을 하고 있는 금융기관들이 무차별적으로
대출을 회수하면서 신규대출은 기피하고 있는 현상황이 지속된다면, 연쇄도산
과 금융시스템의 붕괴가 불을 보듯 명확하다는 이들의 주장은 현장감에서
우러나온 것이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대응은 신속하고 과감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지원자금이 들어오고 차기정권이 들어서면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식의 한가한 현실인식과 대응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금리가 치솟는 현재의 상황을 IMF요구로 긴축이 강화될 것에 대비,
기업들이 자금을 미리 확보하려고 나섰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과성
현상이라고 진단하는데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표적 대기업그룹의 회사채 유통수익률이 17%를 넘어섰는 데도
매수세가 실종상태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중앙은행이 통화공급을 늘렸는 데도 이처럼 시중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은 돈이 은행에서 돌지 않고 있음을 반증한다.

부실대출에 대한 우려로 인한 지나친 보수적 자세가 원인이건, 아니면
실세금리가 더오를 것으로 봐 부도우려가 없는 우량기업 회사채매입도
미루기 때문이든, 어쨌든 금융기관에 문제가 있다.

이같은 금융권의 "자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전기업의 공멸을 부를 극심한
자금난과 엄청난 고금리가 지속될 우려가 짙다.

유통속도가 떨어진 점을 감안해 통화공급을 더욱 늘리든지, 아니면
무차별적인 자금회수와 대출기피에 제동을 걸 특단의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

우리는 김영삼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보완하지 않겠다는데 대해서도
공감을 갖기 어렵다.

이 정부가 내세우는 개혁의 상징이 실명제인 만큼 거기에 대한 대통령의
애착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너무도 절박하다.

검은 돈의 산업자금화를 촉진하기 위해 어떤 형식으로든 금융실명제를
손봐야 한다는데 재계는 물론 여야 각정당들도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금융실명제가 경제난을 불러온 "주범"이냐 아니냐는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만보를 양보해서 금융실명제가 오늘의 경제위기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기업인 시장상인 증권투자자의 절대다수가 그 보완을 요구하고
있는 이상 이를 존중하는 것이 옳고 또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경제활동의 최일선에 있는 그들이 느끼는 부담감과 거부반응을 덜어주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경제위기 극복에 보탬이 된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
여긴다.

현장의 소리에 귀기울여 신속 과감한 조치로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길 거듭
촉구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