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한 경영과 정부 간섭에서 벗어나지 못해 국민적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공기업의 경영 쇄신을 촉진하기 위해 한국통신 가스공사 담배인삼공사 한국
중공업 등 4개 공기업이 정부출자 기업으로 전환되었다.

사장 공채제도, 경영계약제도, 사외이사제도 등이 도입되는 것을 계기로
그동안 정부로부터 직간접의 통제를 받아왔던 공기업이 새로 선임될 사장을
중심으로 자율적 책임경영 시대를 맞게 되었다.

특별법에 의거, 출자회사로 전환된 4개 공기업의 경영쇄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적임의 전문경영인을 발굴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미 후보자 모집공고를 낸 상태이며 앞으로 사장추천위원회가 공개적인
과정을 통해 사장을 선발함으로써 공기업 분야에도 경쟁을 통한 최고경영자
선임방식이 선을 보이게 된다.

문제는 개개 공기업의 특성에 부합하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고루
갖추고 있으면서 기업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있는
경영인을 어디에서 어떻게 검증해 선임할 것인가이다.

최고경영자의 선임은 크게 외부영입과 내부 발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번에 관심을 끄는 대목은 외국인 또는 민간 전문경영인의 외부 영입을
전향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기업의 경영혁신을 고양하기 위해서는 국내외 가릴것 없이 최적임의
전문경영인을 선발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응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 전문경영인을 영입할 경우 사회-문화적 격차를 극복하는
것이 난제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뉴질랜드 영국 등에서 외국인 전문경영인 영입을 통해 공기업의 경영혁신에
성공한 사례가 없지 않으나 이들 국가는 유사한 문화와 동일 언어권 출신이었
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민간 전문경영인을 영입함에 있어서도 공기업의 국민경제적 위상과 경영
환경의 특성상 해당 분야의 전문 경영인을 발굴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사기업 분야에서 검증된 전문경영인이라고 해서 정부 출자기관
에서 경영혁신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해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임경영방식에 의거한 정부출자기관으로 전환되었다고는 하지만 해당
공기업의 경영쇄신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원활한 정책협조가 필요함은
물론이고 노조 및 종업원 관계, 그리고 관련 산업계와의 원만한 관계 등
이해당사자들의 갈등과 이해를 균형있게 조율할 수 있는 경영능력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아울러 그동안 민영화 추진과정에서 4대 공기업의 인수에 민간기업들이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왔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혹시나 민간 전문경영인의 선임이 공기업 인수의사를 가진 해당 민간기업과
의 사전 연계통로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내년 3월이면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속에서 자칫
잦은 최고 경영진의 교체를 초래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관 내부 역량을 최대한 동원하여 경영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전문경영인을 내부에서 발탁함으로써 새로운 제도의 시행에 따른
혼란과 실험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사항이다.

최고경영자를 내부에서 발탁할 경우 조직내 문제와 사업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에 기초하여 경영혁신의 방향과 강도를 분명하게 설정할 수
있다.

또한 경영혁신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중의 하나인 종업원들의 공감과
지지를 획득하는데 있어서도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전략과 혁신능력을 갖춘 전문경영자가 내부에서 양성되고 선발되는 체제를
갖추는 것은 그 자체로서 경영혁신의 주요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4개 공기업의 출자회사 전환을 계기로 정부는 출자기관을 "소유"할
뿐이지 "경영"하지 않는다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원칙"에 입각하여 자율경영
체제의 구축에 앞장서야 한다.

경영자율성이 확보되어야 비로소 전문경영인의 창의성과 기업가 정신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특별법 발효와 동시에 감사원이 해당 공기업에 대해 감사를 실시하고,
관련 부처도 시행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고 있는 것은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인내심을 가지고 대상 공기업의 자율적 경영을 최대한
보장하는데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율성 확대에 상응한 책임경영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경영성과 평가와
보상체계의 정비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단기적인 수익성 위주의 경영성과 향상에 집착해서 공기업부문의
국민경제적 역할을 소홀히 하거나 경쟁력의 원천을 잠식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4개 공기업의 실험적 체제전환은 향후 우리나라 공기업의 민영화
추진 방향을 가름하는 전환점에 그치지 않고 경제살리기를 위한 정부혁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