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 1천원시대.

종합주가지수 대폭락...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사상 초유의 금융권 위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게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일반적으로 금융은 여유자금이 많은 사람들이나 은행 증권 등 특정 업종
에만 해당되는 일로만 생각하기 쉽다.

사실 주식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면 주가폭락같은 금융위기가 피부에 직접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심화는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원인은 근본적으로 실물경제의 부실에서 비롯된 것이고
금융시스템의 붕괴는 경제 전체를 벼랑끝 위기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젊은이들의 씀씀이에서부터 직장 선호도, 여행 및 결혼풍속도까지
금융위기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

우선 금융기관의 취업선호도가 낮아지고 있다.

한때 최고의 직장으로 군림했던 은행 증권 종합금융사 등에 대한 인식이
이전과 달라지면서 최근에는 안정적인 대기업이나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정보통신업체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S증권 인사부 관계자는 "80년대 후반에는 증시 활황에다 높은 임금수준
등으로 증권회사 직원이 최고 엘리트로 대접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계속되는 폭락장세속에 고객과의 분쟁 등 부정적 이미지만
부각되면서 불안정한 직장으로 인식돼 예년에 비해 입사희망자가 줄어들고
있다"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금융권에 취업한 신세대 직장인들은 부업찾기나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반 은행뿐만 아니라 한국은행같은 안정된 직장에서도 정보검색사 공인
중개사 판매관리사 공인회계사 등 자격증 취득열풍이 불고 있고 일부 증권사
직원들은 아예 일과시간 후에 부업을 갖거나 다단계 판매전선에 나서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금융기관의 이미지가 악화됨에 따라 신세대 금융기관 종사자들의 결혼전선
에도 비상이 걸렸다.

"대학때 결혼을 약속한 애인과 최근 심각한 불화에 빠졌다.

졸업후 곧바로 증권사에 취직하고 돈을 모은 뒤 결혼식을 올리려고 마음
먹은게 화근이었다.

주가폭락으로 그나마 모아뒀던 돈마저 거덜나자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는
애인과 사이가 틀어지고 최근 결별통보를 받았다"는 비운을 맛본 증권사직원
까지 나오고 있다.

부실여신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더이상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란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일부 은행과 종금사의 젊은 직원들은 이직을 위해
다른 직장의 공개채용 시험에 원서를 접수시켜 보지만 졸업예정자를 선호
하는 회사들이 많아 서류심사에서 떨어지는 일도 빈번하다.

대학생들의 해외여행이나 어학연수도 줄어들고 있다.

전반적인 경기불황에다 치솟는 환율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에 있는 유학 알선업체의 한 관계자는 "유학이나 어학연수 상담
학생이 올해초보다 절반가까이 줄어들었고 유학알선업체들도 문을 닫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경제 및 금융위기속에서도 이전보다 호황을 누리는 곳도 있다.

신혼여행의 경우 해외로 가는 사례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제주도가 급부상
하고 있다.

동남아 산불의 영향도 있지만 불황속에 소비가 위축된데다 해외여행은
환율급등으로 이전보다 많은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결혼철을 맞아 제주도의 호텔은 거의 발디딜 틈없이 붐비고 있다.

신촌에 있는 스트레스 해소방도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평일에는 12시까지, 주말에는 새벽 2시까지 영업하고 있는 스트레스 해소
방에는 접시던지기 소리지르기 기관총 난사하기 등으로 불황속에 느끼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젊은이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김남국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