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저녁 8시 서울 영등포구 노량진경찰서앞 한국건축토목학원은 수강생
들로 북적거렸다.

넥타이 차림의 샐러리맨들도 꽤 있었다.

남자친구와 나란히 계단을 오르는 여대생도 눈에 띄었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건축기사나 토목기사 자격증.

일단 자격증을 따놓으면 취직하기도 쉽고 사내에서 인정받게 된다고 판단,
야간에 학원에 다니고 있는 것.

이 학원 토목강사 김영호씨는 "지금은 학생 비중이 60%에 불과하나 방학
중엔 90%에 달한다"고 밝혔다.

토목기사 2급을 겨냥하고 있는 임동렬(S전문대 토목학과 1년)씨는 "취업때
자격증을 요구하는 기업이 많다고 해서 여름방학때부터 학원에 다니고 있다"
고 말했다.

노량진 학원가의 모습은 불황기 취업전선의 "자격증 열풍"을 엿보게 하는
단면에 불과하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자격증이 "채용우대권"으로 통한다.

자격증을 "취업 보장 부적"처럼 믿기도 한다.

전문대학 도서관에는 자격시험을 공부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이들에게는 기술자격증이 학점보다 중요하다.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자격진흥과 이한성씨는 "주로 전문대나 중하위권
대학, 지방대 학생들이 핸디캡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자격증을 따려고 많이
응시한다"고 말했다.

전문대생들의 주요 타깃은 전기공사 유무선설비 의장 수질환경 등의 기사
2급 자격증.

4년제대 이공계학생들은 변리사 정보처리기사 토목기사 건축기사 환경기사
산업안전기사 전기공사기사 소방설비기사 등 1급에 많이 도전한다.

경희대 수원캠퍼스 취업정보실 김종경 과장은 "관공서나 정부투자기관에서
채용때 자격증소지자를 우대하기 때문에 공무원시험 준비생들도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린다"고 말했다.

또 "대개 이공계 학생들이 전공분야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하지만 인문
사회계 학생들도 복수전공이나 부전공학과 관련 자격증에 도전하기도 한다"
고 덧붙였다.

그러나 인문사회계 학생들이 도전할 만한 기술자격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정보처리기사를 겨냥하는 학생도 적지 않으나 전산학과 출신 합격률도
20%에 불과할 만큼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인문사회계 학생들의 관심은 공인회계사 법무사
공인중개사 중소기업진단사 등에 쏠리고 있다.

공인중개사 시험은 사실 취직과 무관하다.

그러나 워낙 취직이 힘들다보니 일찌감치 "마이웨이"를 가기 위해 공인
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많다.

지난 2일 치러진 제9회 공인중개사 시험엔 무려 12만4백84명의 응시자가
몰렸다.

이는 제8회 시험 응시인원보다 5만여명이 늘어난 규모다.

이번에 응시한 김은혜(22.경기도 P대 지역사회개발학과 4학년)양은
"2년전부터 시험에 대비했다"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면 명예퇴직한
아버지와 함께 용인 수지택지개발지구에 사무실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사회를 휩쓰는 "자격증 열풍"은 대량해고시대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취업의 문이 워낙 좁다보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려는 군중심리까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 김광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