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이 극심한 위기적 상황에 몰린 데에는 무엇보다도 경기하강국면
에서 발생한 대기업의 연쇄부도를 "연착륙"시키는데 실패했기 때문으로 지적
되고 있다.

경착륙(hard-landing) 충격은 곧바로 국내 금융기관및 국가 신인도 추락
으로 이어진뒤 "금융기관 차입조건 악화->실물부문의 자금 경색->투자심리
동결->경기회복 지연"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이같이 우리경제가 좌초직전의 상황으로 내몰린 직접적인 원인은 <>차입
위주의 방만한 기업경영행태 지속 <>은행의 책임경영체제 부재 <>동남아국가
통화위기 여파 등에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시장조정자및 감독자로서 정부의 잘못도 크다.

정부는 연초 한보철강부도부터 뉴코아부도에 이르기까지 때늦고 원칙없는
처방으로 상황을 악화시켜 왔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종합주가지수와 원화 가치가 올들어서만 각각 17.2%, 12.6% 폭락하는
과정에서 몇가지 대책을 냈지만 정곡을 찌르지 못한 나머지 번번히 실패하기
일쑤였다.

정부 당국자들은 "거시경제지표는 좋다"며 "기업부도는 구조조정과정일뿐"
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을뿐 적절한 대책을 내놓는데 실패했다.

강경식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 취임이후 재경원은 실물부문의 잇단
부도사태가 몰고올 심각성을 과소평가, 특정기업의 회생여부는 전적으로
시장경제원리에 맡기겠다고 강조해 왔으나 결과는 연쇄부도로 치닫고 있다.

게다가 유독 기아그룹의 경우 최고경영자의 퇴진을 집요하게 요구, 기아사태
를 장기화하는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렀다.

이로인한 금융시장 불안감이 국내외로 확산되면서 금융기관의 외화차입이
끊기게 되자 뒤늦게 대외원리금 지급을 보장한다고 약속했지만 이미 가산
금리는 오를대로 오르고 난 다음이었다.

결국 당초 발표와는 달리 기아자동차는 공기업화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해태및 뉴코아그룹에 대한 협조융자를 금융권에 지시하기에 이르는 등
철저한 시장개입주의로 귀착되고 말았다.

정부가 이처럼 개입과 불개입을 두고 명분에 집착한 결과 일부 은행은
물론 상당수 종금사는 심각한 위기에 몰리고 있다.

강부총리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부도유예협약은 연초 한보 삼미그룹의 잇단
부도에 따른 특단의 조치였다.

그러나 2개월가량 부도를 연기해주는 특혜를 제공하면서도 해당기업
대주주의 경영권 포기각서를 사전에 제출하도록 의무화 해놓지 않아 협약
운용과정에서 채권단과 회사측의 갈등만 심화시켰다.

부도유예협약은 제2금융권의 자금회수를 오히려 재촉, 결과적으로 ''부도
촉진협약''이라는 오명만을 쓴채 사실상 용도폐기되고 말았다.

강부총리는 지난달 하순 원 달러 환율이 투기심리로 연일 폭등하는데도
외환시장도 다른 시장과 같이 수급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불개입을 천명했었다.

결국 원화가격이 폭락해 달러당 1천원선조차 위협받기에 이르러서야 시장
안정조치를 내놓는 등 시장개입의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마련을 뒤늦게 승인, 환율정책에서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물론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정부가 사사건건 시장에 개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장자체가 붕괴국면에 처해있는 시점에까지 정부가 ''불개입''만을
금과옥조로 떠받들고 있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최근 수일동안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모처럼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 연쇄부도와 가격폭락이라는 거대한 비용을 이미 지불한
다음이다.

더욱이 인위적인 달러화 매입억제 조치가 곧 한계에 부딪치고 외국인이
다시 주식매도세에 가담할 경우 "환율 급등->주가 폭락"이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따라서 당분간 정부는 비상국면이라는 인식아래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한
단계적인 대비책을 마련하고 국제공조체제 구축에 서두르는 등 "깨어있고
긴장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최승욱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