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도 아무하고나 자지는 않는댔어. 자기도 목숨이 아깝다는 거야"

"병을 예방하면서 놀아라. 돈은 두었다가 다 뭘 할래. 즐기면서 사는
거야. 인생이 뭐 별거야. 네 한달 수입의 삼분의 일만 써. 너는 원래
노는데는 도가 튼 여자지만 말이야. 우리가 죽어봐. 장기기증이나 해달라는
의사의 부탁을 들을 뿐이야. 이제 우리 인생의 끝이 얕은 물밑처럼 보이지
않니?"

"네가 나를 이해해주어서 정말 고맙다.

우리 문수하고 미아는 요새 약혼한 사이처럼 가깝게 지내. 미아가
학원에서 곧장 우리집으로 왔다가 귀가하고 있단다.

그 애들이 너무 행복해 보여. 부러울 정도로"

"너는 진짜 좋은 시어머니 노릇을 할 것 같아. 문수 때문에 나도
안심하고 산다.

우리 미아에게는 그 애가 제일 맞는 신랑감 같거든"

"그래서 나는 미아가 대학에 들어가면 곧 약혼을 시키고 싶어.
학사부부면 어떠니? 우리 문수도 기집애들이 너무 덤벼서 걱정이었는데.
둘 사이에 애가 들면 결혼시키고 뭐 그렇게 하자"

"네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이다.

잘 못 하면 뜻밖의 상대들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아이들 문제는 자연스럽게 가자"

공박사는 지영웅 때문에 잔뜩 공포를 느꼈던 경험을 토대로 젊은
아이들을 너무 억압할 것이 아니라 물이 흐르듯이 가도록 하기로 결심을
했다.

누가 미아의 그 황당한 눈동자를 다시 보고 싶을까? 공박사는 미아의
시선에서 느꼈던 그 미칠 듯한 욕망의 불덩어리를 다시는 보고싶지 않다.

그것은 무슨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참으로 기막히는 리비도의 광기가
아니었던가? 원하는 곳으로 흘러가거라.가장 온건한 방법으로. 나의
사랑하는 딸 미아야. 공박사는 뉴올리언즈의 전화번호를 적은후 밤
여덟시쯤 갑수에게 전화를 넣었다.

목이 쉬고 기운이 다 빠진 갑수는 그녀가 새로운 애인 은자 시인의
친구라는것 때문에 상당히 호들갑을 떨면서 받는다.

"저는 사장님께서 그렇게 대단한 분이신줄 몰랐어요"

"고마워요. 은자 시인을 사랑해줘요"

"그런데 저에게 무슨 용건이 있으신것 같은데요?"

"맞아요. 센스있어 좋으네요"

그녀는 약간 망설이다가 수술은 빨리 할수록 효과적이라는 과학도의
판단으로 일사천리로 용건을 말한다.

"어제 시골서 온 그 덕대같은 친구, 에이즈검사를 해서 그 결과를
나에게 보여주었으면 해요.

내주 쯤이면 확실한 결과가 나올 것 같으니까 내가 내주 금요일에
전화를 넣을 게요.

그리고 당부하는데 검사 후에 절대로 여자와 같이 나가지 않도록 해요.

그러면 먼저 한 테스트결과는 도로아미타불이 되니까요"

그녀는 오피셜하게 단숨에 이야기를 쏟아버린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