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 = 김영근 특파원 ]

홍콩에서 영국의 유니언잭이 내려지고 중국의 오성홍기가 게양된지
1백여일이 지났다.

그동안 홍콩상공을 화려하게 수놓던 불꽃놀이의 광경은 세계인의 뇌리에서
사라져가고 요란스럽던 북소리도 점차 잊혀져가고 있다.

이젠 중국당국과 세계언론들이 뿜어내던 홍콩의 열기는 찾을 길이 없다.

홍콩반환 1백일(10월8일)이 지난 현재까지 홍콩은 어떤 변신을 꾀했고
또 무슨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가.

흥분이 가라앉은지 1백여일이 지난 현재 홍콩은 외견상 7월1일 반환
이전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

구태여 찾는다면 홍콩시내 곳곳에 나붙은 "공창미호적미래(함께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자)"라는 내용의 붉은 표어가 새로 등장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찬찬히 홍콩의 정치 경제 사회의 각 부분을 들여다보면 많은
변화를 엿볼수 있다.

특히 변화가 심한 곳이 경제분야다.

거대한 자산을 거머쥔 중국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홍콩을 1국2체제와
항인항치라는 원칙으로 지켜나가고 있다.

홍콩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당국은 자국기업의 홍콩진출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지난 6월말 현재 홍콩에 거점을 두고 있는 중국기업은 무려 3천2백여개에
달하고 있다.

이들 홍콩진출 기업의 자본총액만도 4백50억달러에 이른다.

여기에 중국의 대표적 기업인 화륜그룹 등이 현지인 명의로 투자한
액수까지 합치면 1천억달러에 육박할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홍콩반환을 전후해 홍콩의 부동산 값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뛴것도
큰 변화중의 하나다.

중국당국이 홍콩의 자본주의를 일부나마 희석시키기위해 현지에 인력을
대거 파견하고 대형빌딩과 토지를 사들였다.

이는 부동산값 폭등으로 이어졌다.

부동산값 상승현상으로 홍콩경제가 압박을 받자 둥젠화(동건화)
특별구행정장관은 "14만가구의 아파트를 건설하는등 주택가격 안정에
힘쓰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출신 전문인력들의 홍콩진출도 눈에 띄게 늘어가고 있다.

과거 홍콩기업들은 전문경영인등 부족한 고급인력의 상당수를 미국
영국등지에서 충원해왔다.

파출부와 식당종업원은 월 4백달러 안팎의 급여를 주고 필리핀등
동남아국가에서 구해 썼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컴퓨터 반도체등의 기술자를 중국 본토에서 조달한다.

섬유 완구등 노동집약산업체들은 월 2백달러 내외로 필요한 노동력을
아무때나 조달할수 있다.

홍콩주식시장 주가의 변동폭이 커지고 중국당국이 홍콩증시에 직.간접적
으로 개입하는 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지난 7월 홍콩반환을 전후해 16,000까지 치솟던 항셍지수가 최근에는
12,000으로 곤두박질쳤다.

홍콩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자 중국당국은 "홍콩은 적정한 외환보유고를
유지는등 경제상황이 양호한 상태"라며 "중국은 홍콩의 번영과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종의 홍콩 증시에 대한 "지원사격"인 셈이다.

정치분야에서도 변화는 감지된다.

최근 홍콩내 대표적인 반중국인사인 리주밍(리주명)씨가 공개적으로
"중국이 1국2체제를 실현할 의지가 확고함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리씨는 홍콩의 주권이 영국으로 넘어가는 순간까지 격렬한 반중국
시위를 주도한 인물.

이는 홍콩의 정치가 우려했던 것을 불식시킬만큼 "평상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과 통한다.

홍콩반환 이전에 반중국 시위를 주도했던 대학가의 분위기도 변화속에
휩싸여 있다.

대학 구내의 어떤 곳에도 과거와 같은 격렬한 반중국 구호를 찾아볼수
없다.

사회분야에서도 본토귀속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이전에는 홍콩인들의 상당수가 영국 여권을 갖고 있었으나 이젠
특별행정구 여권을 소유하려는 사람이 급속히 늘어가고 있다.

또 다른 사회현상중의 하나는 홍콩반환을 앞두고 외국으로 이민갔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홍콩출신과 본토인간에 태어난 신생아들의 국적취득도 자유로워졌다.

"홍콩주민의 해외 출생 자녀는 홍콩 거주의 권리를 가진다"는 홍콩기본법의
발효에 따라 홍콩출신 "아버지"를 둔 중국어린이들의 홍콩 거주가 인정된다.

이처럼 홍콩의 정치 경제 사회가 큰 변화를 겪고 있으면서도 외견상으로는
"이상무"로 비쳐지고 있는 것은 중국이 홍콩반환 이후의 준비를 워낙 철저히
했기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같은 홍콩의 "조용한 속에서의 큰 변화"가 10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변화가 계속될 경우 홍콩은 오는2047년(사회주의 적용시점)께
변화나 충격없이 중국체제속으로 편입될 것이라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