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62) 전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이 남북통일 5대 원칙을 담은 저서
"통일로 막히면 돌아가자"(통일번영연구원)를 펴냈다.

"대북정책이 너무 경직되면 역효과를 가져옵니다.

외투를 바람이 아니라 따스한 햇볕으로 벗기는 지혜가 필요해요"

그가 제시한 통일 5대 원칙은 <>평화통일 <>국제협조속의 민족자존자결
<>인권이 보장되는 자유민주체제 <>역동성있는 시장경제제도 <>평등을
지향하는 복지사회 구현.

"남북대화도 쉬운 것부터 풀어가야 합니다.

이런저런 조건 붙이지 말고 얘기가 통하는 것부터 실천하다 보면 교류가
활성화돼요.

이런 것들이 쌓여야 북한에 개방과 자유,실용주의 바람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는 "대북 교류협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측의 힘이 축적돼야
한다"며 "그들이 적화통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도록 유도하면서 "동토를
햇볕으로 녹이는" 방법과 "당근정책"을 병행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남북고위급 회담이 한창이던 92년 여름,서울을 비공식 방문한 김달현
북한 정부원부총리가 심각한 식량난과 전력난을 호소하며 대북원조를
요청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집안문제로 그 "호기"를 놓치고 말았죠"

당시 북측은 식량지원과 함께 북한지역이나 휴전선 혹은 비무장지대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줄 것을 호소하면서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이 추진중이던
남포공단 공장건설을 앞당겨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식량지원문제는 장기저리차관등 유상지원 방침을 고집한 정부내
강경파의 주장에 밀려 무산됐으며 원전건설도 핵투명성 확보문제와 맞물려
좌절됐다.

청와대의 약속까지 받았던 남포공장도 정치논리에 밀려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때문에 북한의 온건파가 유배당하고 강경파만 득세하는 결과가
빚어졌지요"

그는 미전향 장기수 이인모씨 송환과 관련해서도 아쉬움이 많다.

91년 고위급회담서 북측이 이씨 송환을 위해 판문점 이산가족면회소
설치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지만 우리측은 시간만 끌다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채 그를 보냈다는 것.

"당국간 협상만 고집말고 민간차원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접촉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이책에는 통일정책에 관한 희귀자료와 사진들이 많이 들어있다.

사진을 구하느라 비용도 적지 않게 썼다고. 전남목포 태생인 최 전부총리는
서울대정치학과를 졸업했으며 9~12대 국회의원과 국회부의장 체신.노동부
장관을 지냈으며 통일원을 떠나던 93년 주식회사 형태의 통일번영연구원을
설립, 현재까지 회장을 맡고 있다.

<고두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