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이 기아자동차 아시아자동차 기아특수강 기아인터트레이드 등 4개
회사에 대한 화의를 신청한 것은 경영권을 지키면서 부도를 피하기 위해
달리 마땅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선홍 회장의 사표를 완강히 거부해온 기아의 기존방침을 감안할 때
어느정도 예견됐던 일이기도 하다.

화의신청으로 기아가 이 제도의 취지대로 경영권변동없이 정상화되고
채권금융기관의 피해도 최소화될수 있다면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꼭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화의신청 이후 기아와 그 협력업체들이 넘어야할 산은 한두개가
아니기 때문에 걱정스럽기만 하다.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과 채권은행단,그리고 종금사 등도 원칙적으로
화의에 동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한다.

법정관리에 비해 동결되는 기간도 짧고 금리조건도 채권자에게 유리한게
화의이고보면 굳이 이를 거부해야 할 까닭은 없을게 당연하다.

그러나 이같은 "원칙적 동의"가 빠른 시일안에 화의가 개시될수 있을
것이란 보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화의조건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벌어질 것은 당연하고 채권금융기관의
종류와 수가 많은 만큼 상당한 절충기간이 불가피할 것 또한 분명하다.

우리는 기아문제와 관련, 제1차적으로 생각해야 할 대상이
협력업체들이라고 보기 때문에 화의결정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기간이 걸릴
것이란 점을 특히 걱정스럽게 여긴다.

협력업체들 입장에서 보면 부도방지협약 종료이후 화의개시결정까지의
기간은 지금보다도 더욱 어려울 것이 너무도 분명하다.

지금도 협력업체들이 겪는 어려움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물품대금으로 받은 기아 어음을 할인하기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부도유예협약 이전에 할인했던 어음도 기일이 되면 할인업체가 담보를
제공해 일반대출을 받아 이를 메우지 못하는 한 그 업체는 부도가 불가피한
형편이다.

한마디로 화의개시 결정까지 버틸 자금여력이 없으면 협력업체들은
견디기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이미 상당수의 기아 협력업체들이 연쇄부도를 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과연 앞으로 6~7개월을 버틸 여력을 가진 협력업체가 몇이나 될지
걱정스럽다.

부도유예협약 대상이 되면서 이미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화의신청에 따라 앞으로는 각 은행이 기아에 대한 어음장교부를 더욱
줄이려들 것도 확실하다.

화의로 자금회수가 동결된 기업에 대한 어음장교부는 은행입장에서 보면
부실여신을 키우는 꼴이 되니까 당연히 그렇다.

기아가 자동차판매대금으로 협력업체를 어느 정도 지원해줄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어쩌면 물품대금을 어음으로 받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

기아의 화의신청으로 협력업체의 연쇄부도 우려는 더욱 커졌다.

바로 이점을 정부와 금융기관,그리고 기아경영층은 분명히 인식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