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유교가 인간중심적 현세주의적인 것이라 하여 유교는 도덕
규범이지 종교가 아니라고 한다.

또 유교는 종교적인 조건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불완전한 종교라고 말하
기도 하고, 과거에는 종교였다 하더라도 현재는 종교적 생명이 끊어진 죽은
종교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서양에서 형성된 "종교(Religion)"라는 개념, 특히 기독교의 관점으로
본다면 유교는 종교가 아닐 수밖에 없다.

유교에는 창조주인 인격신은 물론 천당 지옥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종교학자들은 "깨우침과 구원을 목표로 하는 삶의 총체적
지향과 방법"은 모두 종교로 보고 있다.

따라서 유교도 분명히 종교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

비록 창조신이나 구원의 주체는 아니지만 유교에도 인간의 생명과 자연의
질서를 주재하는 하늘이라는 개념이 있다.

"마음을 다하는 자는 본성을 알고,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안다.

마음을 알고 본성을 기르는 것이 하늘을 섬기는 방법이다"

맹자에 나오는 이런 구절도 유교의 종교성을 보여주는 핵심요소라고
하겠다.

조선왕조때 극치를 이룬 성리학이라는 방대하고 정밀한 이론체계도 하늘
내지 상제에 대한 유교적 신앙의 인식과 체험을 합리적으로 구명하려 했던
노력의 하나였다는 사실은 유교의 종교적 성격을 한층 더 뚜렷하게 드러내
준다.

단지 지나치게 이론쪽에 치중했던 탓으로 유림이 신앙인의 집단이 아니라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집단처럼 잘못 인식돼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진암 이병헌(1870~1940)은 일제때 한민족의 정신적 지주인 유교를 개혁해
종교로 복원시켜야 한다는 유교개혁운동을 일으킨 인물이다.

진암은 한말의 거유 면우 곽종석의 문인으로 다섯차례나 중국을 드나들면서
강유위의 사상을 직접 전수한뒤 "유교복원론"이란 저서를 펴냈다.

"유교복원론"에서 진암은 유교를 종교로 정립시키기 위해 공자를 절대
유일의 교조로 내세웠고 상제를 주재신으로 부각시켰다.

그리고 유교의 전파방법으로 교당제도확립 역경사업추진 교사제도채택 등
구체적 방안까지 제시했다.

진암이 주장한 유교의 복원이란 한마디로 전통유학자들의 잘못된 관행에
매달리지 않고 공자의 본원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는 유교의 종교적 개혁을 주장했던 한국의 "루터"였던 셈이다.

그러나 1923년 향리인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 공교회인 배양서당을
세우고 중국에서 가져온 공자상을 봉안하는 식전에서 진암의 꿈은 산산조각나
버린다.

몰려든 경남 유림의 난동으로 식장은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중국에서 강유위의 혁신을 통한 유교이념의 재현이라는 이상이 손문의
혁명으로 좌절된 것이라면, 진암의 꿈은 전통유림의 힘에 눌려 압살당한
꼴이다.

지난해 성균관 유도회 성균관이사회의 3두체제로 운영되던 한국유교가
종명을 "성균관유교회"로 하고 수장인 총전밑에 7품계의 성직자를 두는 등
종헌을 제정해 새 종단으로 출범하면서 "유교의 종교화-현대화"를 선언했다.

물론 종사는 공자이고 경전은 사서오경이며 전국 2백35개의 향교는 교당이
된다는 계획도 세워 성균관이 생긴뒤 6백여년만에 놀라운 종교개혁을 이루려
하는 새 종단에 많은 사람이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최근 성균관 이사회측과의 법정분쟁끝에 성균관관장을 비롯한 개혁
세력이 완전히 물러났다는 소식이다.

우리의 의식속에 철학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유교가 이 개혁을 통해
보다 조직화 현대화돼 건전한 생활종교로 탈바꿈하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의
실망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체질적으로 보수성을 지녀 현대사회에 적응력을 갖지 못하고 젊은 세대를
흡수하지 못해 점점 고령화로 무력해지는 유림조직에서는 사회적 지도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21세기를 준비하고 있는 오늘날 지구촌의 시대정신은 시장경제원리와
민주주의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경쟁에서 지면 살아남기 어렵고, 전통적 질서는 전반적으로 파괴되고
해체되고 있다.

그 속에서 모든 개인은 이익과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문화적 혼돈에 빠져있는 공동체를 유지해가는 정신적 지주가 어느때보다
필요한 때다.

유교를 혁명의 적으로 몰아붙여 한때 말살해 버리려 들었던 중국에서도
최근 유교부활론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도덕적 위기를 초래하는 정신오염을 막는 명약은 유교뿐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국유교가 현대사회속에서 생동하는 종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유교이념의
현대화를 위한 자기개혁에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성균관이 결코 문화재이기도 한 "석전"을 주행사로 삼는 곳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누가 성균관장이 되든 이번에 다시 유교개혁의 싹을 압살시켜버리는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