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뭔데요?"

"당신이 찾는 물오른 남자의 전화야. 상당히 미남이고 스무살짜리
촌놈이야. 나보다 훨씬 매력이 있을 거야. 만약에 그 애가 삐삐번호를
바꿨으면 다시 연락해줘, 핸드폰으로"

그는 이제 자기 일을 끝냈다는 듯이 맥주를 한컵 쭉 들이켠다.

"정말 사람 무안하게 구네. 다른 남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바로 당신이
필요한 거야. 나하고 결혼할 수 있어? 그러면 나도 이혼할게"

"아이들은 어떻게 하구?"

그녀는 언제나 아이들을 깃발처럼 내걸었었다.

"그리고 당신 남편은 조루증이거나 그런 것은 아니잖아. 딴 첩실을
둔것도 아니구"

"정말 왜 이러슈 지코치! 나를 완전히 바보로 만들고 이제는 모른체야?"

"생각해봐요, 옥경씨. 사랑은 결국은 언젠가는 끝장이 나는 것이고
권태는 어느 남자에게나 오는 거예요.

싫어졌다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또 만나면 그것으로 무엇이 남아요?

나는 여사님보다 덜 살았지만 사랑의 허무함에 대해서는 도가 튼
변강쇠로소이다. 아시것소? 내 말이 틀려요?"

그는 자기가 경험한대로 말한다.

말재주는 없어도 진실을 말한다.

그리고 그는 전보다 많이 어른스러워졌다.

도무지 옛날과는 인간이 달라진 것 같다.

사뭇 다른 남자와 이야기하고 있는듯 하다.

"그 아이는 나를 잊게 해줄 겁니다.

만나고 안 만나는 것은 옥경씨 자윱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은 병이든 것 같은데 그가 병을 다스려 줄만한 친구니까
만나봐요.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비앰더블류의 양심적 말씀이 당신 애인을
소개해줘라,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그게 지영웅 너에게 내가 내리는
명령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소.

나는 늘 혼자서 말하고 나의 영혼속의 천사와 대화를 해요"

그는 아주 진솔하게 자기 안의 천사와 악마에 대해서 말한다.

놀란 것은 권옥경이다.

그녀는 한번도 그를 그렇게 정신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남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떻게 보면 무정하게 자기를 피해버리는 것보다는 그녀의 근본적인
고민을 해결해주려는 그가 얼마나 인간적인가 말이다.

정말 괄목할만한 변화이며 성장이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을 만났으면 저렇게 변했을까? 그리고 자기가
알고 있던 지영웅 이상의 인간적인 향기를 가진 놈이라고 옥경은 그에게
고개를 깊이 숙인다.

"나 이제 당신에게 준 차가 아깝다는 생각을 안 하게 되었어.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우리가 허니라고 부르던 그 때가 정말 그립고 미치겠다.

지코치, 나 통곡하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3일자).